은퇴 후를 대비하기 위해 기억할 네 가지
연금 신뢰도·저축률·남녀 평등·금융 이해력 높여야
[뉴스핌=김성수 기자] 세계경제포럼(WEF)의 마이클 드렉슬러는 전세계적으로 연금 부족 사태의 심각성이 기후 변화와 맞먹는다고 지적했다. 평균 예상수명이 100세로 늘어나면서 사회 전체에서 은퇴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지는데, 이들이 받아야 할 연금 액수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 속도가 빠른 일본은 60세부터 은퇴가 시작된다. 예상수명이 107세인 사람은 팔팔한 20세 때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해도 은퇴자로 사는 기간은 45년이 넘는다. 수입이 발생하는 기간보다 수입이 없는 퇴직자로 사는 기간이 더 긴 셈이다.
WEF는 전 세계 노동인구와 은퇴인구의 비율이 현재는 8 대 1이지만 2050년에는 4 대 1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은 일하는 사람 8명당 은퇴하는 사람이 1명이지만 2050년이 되면 4명당 1명이 된다는 뜻이다. 30년 남짓 만에 부양인구가 2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예상 출산율이나 은퇴 연령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가정했는데도 결과가 이러하니 가벼이 듣고 넘길 일은 아니다. 노후 걱정 없는 최고 은퇴전략을 만들기 위해 기억해야 할 네 가지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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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에 대한 사회적 신뢰 높여야
은퇴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적 부담을 해결할 방법은 있다. 예상수명이 늘어날수록 퇴직 연령도 뒤로 미루는 것이다. 다만 이 방법은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렵다. 은퇴 연령을 늦추려면 기업에서 고용 상태를 유지해줘야 하고, 그러려면 근무시간이나 임금과 같은 근로 조건에도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결국 차선책은 연금 시스템을 넉넉하게 확충하는 것이다. 그런데 퇴직연금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 구성원들이 이를 신뢰해야 한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우리나라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연금으로 노후를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고 한 응답률은 8.5%에 그쳤다. '자신이 낸 금액만큼 국민연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한 응답률도 29.1%에 불과했다.
WEF는 연기금이 사회적으로 신뢰를 얻으려면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기금이 적은 비용으로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돼야 모든 사람을 위한 '안전망'이라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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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많은 돈을 저축해야
연기금이 아무리 높은 수익률을 내도 연금 자체가 없으면 허사다. 사회 구성원들 역시 노후를 대비해 저축을 늘려야 한다. 은퇴를 대비한 저축에 비하면 연금 운용수익률은 크게 중요치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WEF는 주식·채권의 실질수익률을 각각 8.6%에서 3.45%로, 2.6%에서 0.15%로 낮췄을 때 전체 연금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운용수익률이 이처럼 절반 이하로 떨어졌는데도 연금 액수의 손실 폭은 겨우 35% 증가하는 데 그쳤다.
WEF는 연기금의 낮은 수익률이나 비용 증가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사회 구성원들의 턱없이 낮은 저축률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평균 연봉의 최소 10~15%는 연금으로 저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은 저축률이 이보다 훨씬 낮다. 미국 근로자복지연구소(EBRI)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 4명 중 1명은 은퇴에 대비한 저축액이 1000달러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은퇴 후 편안한 노후를 위해 필요한 돈이 최소 50만달러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 저축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 여자는 남자보다 연금 수령액이 적다
남녀 임금 불평등 문제는 노후 자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세계적으로 여성의 연금 수령액이 남성보다 30~40% 더 낮다는 것이 WEF의 조사 결과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거나 출산·육아 등으로 일자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월급과 근속연수가 줄어들면 연금도 그만큼 감소할 수밖에 없다. 또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예상수명이 길어서 연금 지급액수가 더 작게 쪼개져서 나온다.
유럽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로자의 연금수당을 계산할 때 성별 예상수명이 아니라 남녀 모두를 합한 평균 예상수명을 반영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WEF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사노동과 육아·간병 등도 모두 연금 수령액에 반영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도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 못지않게 사회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고, 이러한 사람들이 연금 수령에 차별을 받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프랑스에서는 자녀가 있는 주부들에게 연금 불입 기간에 가산 혜택을 준다. 양육 기간 중 한 자녀당 8분기 범위 내에서 1년에 1분기를 가산해주는 것이다. 두 자녀를 둔 주부는 16분기까지 가산되며, 세 자녀 이상을 둔 부부에게는 은퇴연금에 10%를 더해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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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 이해력을 더 높여야
WEF는 전세계적으로 금융에 대한 이해력(financial literacy)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기본적인 금융 개념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금융 지식을 과대평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호주 언론 시드니모닝헤럴드에 따르면 호주 ME은행이 1500명을 대상으로 금융 이해력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3%는 '평균 이하' 수준이었고, 질문에 절반 이상 맞게 대답한 응답자는 40%에 그쳤다. 캐나다에서도 연방정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8%는 자신이 금융을 이해하고 있다고 대답했으나 실제 금융 이해도를 측정한 결과 60%가 금융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퇴직연금이라는 개념에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예상 자산운용수익률, 저축률, 복리, 할인율, 분산투자 등 여러 가지 금융 개념이 혼합된다. 전세계적으로 확정기여형(DC형, 근로자가 자신의 퇴직연금 투자 포트폴리오를 직접 선택하고 수익률에 책임지는 것) 퇴직연금이 늘어나는 가운데 사람들의 금융 이해도가 낮은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WEF는 회사나 연구소, 정부기관이 근로자들의 금융 이해력을 높이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택 구매에서 자녀 교육에 이르기까지 삶의 주요 지출을 결정하고, 자신의 재정상태가 양호한지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금융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뉴스핌 Newspim] 김성수 기자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