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 김규진, 1920년, 비단에 채색, 195.5×8 2.5cm 등록문화재 제240호 <사진=문화재청> |
[뉴스핌=이현경 기자] 98년 만에 창덕궁 희정당의 '금강산도' 벽화가 국민에게 공개된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연수)은 오는 13일부터 2018년 3월4일까지 '창덕궁 희정당 벽화' 특별전을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희정당 벽화는 1920년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이 그린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와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두 점이다. 비단에 그린 그림을 종이에 배접하여 벽에 붙이는 부벽화 형식으로 제작됐다. 세로 196cm, 가로 883cm에 이르는 대작이자 마지막 궁중장식화다. 조선 시대 진경산수 화가들이 즐겨 그린 금강산을 큰 화폭에 그려 희정당 벽면을 장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20년 제작되어 오랜 세월 노출되어 있으면서 훼손이 진행되어 보존처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는 이 두점의 벽화를 2015년 8월 분리해 2016년 12월까지 보존처리를 했다. 처리를 마친 후 원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하고 희정당에는 모사도를 제작해 붙였다. 희정당 내부는 그동안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고 2005년 한 차례 공개되었을 때도 전각의 규모가 워낙 커 멀리서만 확인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렇게 벽화를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는 제작된 지 98년 만에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전시는 '창덕궁 희정당'에서는 벽화가 설치된 공간인 '창덕궁 희정당'을 보여준다. 창덕궁 희정당은 대조전, 경훈각과 함께 내전(內殿)을 구성하는 건물로 본래 국왕이 신하들을 만나 국정을 보던 편전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경운궁에 머무르던 순종 황제가 1907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는 접견실로 사용됐다. 1817년 일어난 화재로 내전 전각이 모두 소실되면서 현재 건물은 1920년에 재건한 것이다. 경북궁 강녕전의 자재를 사용해 겉모습은 조선식이지만 설비, 가구와 실내장식은 서양식 건물로 재건했고 이때 대청의 동·서벽 상단 전체에 전에 없던 대규모의 벽화를 붙여 장식했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김규진, 1920년, 비단에 채색, 195.5×8 2.9cm, 등록문화재 제241호 <사진=문화재청> |
2부 전시는 '창덕궁 희정당 벽화'가 주제다. 형식, 주체, 화풍 등 여러 면에서 기존의 궁중 장식화나 진경산수화의 전통과 구별되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 두 점의 벽화가 소개된다. 희정당 벽화는 이전에 궁중 장식화로 그리지 않았던 금강산 실경을 주제로 했고 창호나 병풍에 주로 그려졌던 기존 궁중 장식화와 달리 비단 7폭을 이은 압도적 규모다. 화가 김규진이 그린 제목과 낙관으로 작가적 정체성을 드러낸 점, 전통적 청록산수화풍과 근대적 사생화풍을 함께 사용해 묘사한 점에서도 변화상이 드러난다.
한편 두 점의 벽화를 그리기 위해 김규진이 금강산을 답사하며 제작한 초본인 '해금강총석도(海金岡叢石圖)'도 전시된다. 이는 1974년 이후 실물로는 처음 공개된다.
3부 전시 '해강 김규진'에서는 작가 김규진이 금강산과 관련해 벌였던 활발한 서화 활동을 보여준다. 김규진은 주로 묵죽도와 서예작품으로 유명하나 기념비적 대표작인 희정당 벽화는 금강산 실경을 주제로 했다. 그는 금강산 표훈사, 신계사 등의 의뢰로 큰 글씨를 써서 이를 암벽에 새기기 위해 금강산을 여러 차례 여행했다. 금강산에서 전람회나 휘호회를 열었고 금강산 그림과 여행기를 신문에 연재했다. 이를 모아 '금강유람가金剛遊覽歌'라는 단행본도 발행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희정당 벽화가 제작된 1920년 전후에 집중되었는데, 당시 금강산이 대중 관광지로 개발되어 관광 열풍이 불었던 상황과 관련이 깊다. 이때 발행한 단행본인 '금강유람가'도 13일부터 19일까지 일주일간 전시된다.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