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즐기려면 관련 장비값 수백만원 필요
시장은 계속 크는 중...기업용 수요 증가 전망
[ 뉴스핌=황세준 기자 ] "다해서 571만원이세요." "아, 네..." 회사원 윤모(33, 남)씨는 가전제품 매장 직원의 설명을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가상현실(VR)을 집에서 즐기려 견적을 알아본 그는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놀랐다.
윤씨는 삼성전자가 지난 21일 VR 헤드셋(HMD) 신제품을 79만원에 출시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장을 찾았지만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HMD를 구동하기 위해 필요한 컴퓨터 본체 가격이 306만원이었던 것. 매장에 세트로 비치된 게임용 모니터는 186만원이었다.
모니터는 집에 있는걸 쓴다 해도 40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이다. 매장 직원은 "200만원짜리 게이밍 노트북이랑 연결해서도 사용 가능하다"고 대안을 제시했지만 윤씨는 선뜻 카드를 꺼내지 못했다.
'삼성 HMD 오디세이'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
삼성전자가 지난 21일 가상현실(VR) 헤드셋(HMD)을 선보이면서 소비자들의 선택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높은 가격이 여전히 걸림돌이다. HMD를 제대로 구동하려면 빠른 속도의 CPU와 고용량 D램을 장착한 컴퓨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회사측에 따르면 HMD의 권장사양은 인텔 코어 i5(6세대) 또는 AMD FX-4350 4.2Ghz CPU, 8기가바이트(GB) 이상의 D램, 엔비디아 GTX 1050 또는 AMD RX 460 이상 그래픽카드 등이다.
운영체제도 윈도우 10을 깔아야 한다. 이는 1세대 VR HMD인 오큘러스 '리프트'나 HTC '바이브'보다 높은 요구치다. HTC 바이브는 윈도우 7 운영체제에 인텔 코어 i5급 CPU, 4GB D램, 엔비디아 GTX 970급 그래픽카드 등이 권장사양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출시한 HMD들은 실제로는 인텔 코어 i7급의 CPU를 장착하고 저장장치도 HDD가 아닌 SSD를 사용해야 버벅엄 없는 가상현실 화면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가상현실 넘어 혼합현실로 '진화 중'
사양이 높아진 건 기존 가상현실에 현실화면을 더한 '혼합현실'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총 쏘는 게임을 실행하면 가상의 손이 아닌 실제 사용자의 손이 화면에 나타나는 식이다. 그만큼 몰임감이 높아진다. 하지마 소비자들이 최신 컴퓨터를 새로 장만해야 하는 점은 걸림돌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HP와 협업해 미국에서 데스크톱+VR HMD 패키지를 748달러(한화 약 81만원) 에 프로모션 중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같은 행사가 없다. HTC가 '바이브' 한국 판매 가격을 지난 8월 인하했지만 99만원으로 삼성전자 HMD보다 20만원 비싸다.
HMD 무게가 수백그램에 달해 장시간 착용하기 적합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아직 VR 대중화 단계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지난 15일 지스타를 참관한 자리에서 "대중화를 위해선 디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다만, VR 시장 자체는 꾸준히 성장 중이다. 온라인 게임 제공 사이트 스팀과 Viveport는 3600개 이상의 게임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평창동계올림픽 체험홍보관에서 한 방문객이 가상현실(VR) 기기를 통해 올림픽 경기 종목 체험을 하고 있다. [한국인터넷신문협회 공동취재단 제공] |
기술의 활용 범위도 게임을 넘어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후지쯔는 일본 후지쯔와 도쿄대학이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심장 시뮬레이터의 데이터를 3D 입체 VR로 보여주는 심장 뷰어를 도쿄대학 의학부에 제공했다.
이 데이터는 심전도 강의에 활용한다. 학생들은 심장 세포의 전기자극이 전달되는 현상을 가상 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후지쯔는 강의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중 교육 및 의료 기관용 상용화 소프트웨어를 내놓을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강남세브란스병원, 콘텐츠 제작 전문기업 에프앤아이와 협업해 VR 기반의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내년 상용화한다. 이 프로그램은 자살 위험 진단과 예방을 위한 인지행동치료 연구, 심리 평가와 교육 훈련, 심리 진단과 치료 등에 활용한다.
삼성전자측은 "의료 분야에서 VR 기술을 통한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이 주목 받고 있다"며 "앞으로 VR 기반 서비스 개발과 인프라 확충을 위해 각 분야 전문 기업과 협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용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소바자용 디바이스 출시는 기업용 시장 경쟁의 전초전 성격이라는 분석이다.
IT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ABI리서치는 혼합현실 기술의 글로벌 시장 규모가 2021년에 950억달러에 달하고 2022년 관련 디바이스 출하량의 89%는 기업 수요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뉴스핌 Newspim] 황세준 기자 (hsj@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