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구상 부재 트럼프, 亞 순방 '빈손 귀국' 예상
새 무역 규칙 쓰는 EU·중국…미국 무역 적자 집착
[뉴스핌= 이홍규 기자]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와 양자 무역 협상을 고집하는 미국이 글로벌 통상 무대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6일 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기간 중 미국의 실질적인 새 무역 구상을 제시하지 못한 채 많은 미국 기업들이 희망을 품고 있는 아시아를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무역 적자를 거론하며 미국의 유리한 입장에서 양자 무역 협상을 강조할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순방 기간 다자간 무역 협상을 추진하는 일본과 중국 등 여러 아시아 국가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외면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통신/뉴시스> |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0일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무역 이익을 추진하고 '비(非)개방적'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와 일본, 호주 등이 힘을 합치자는 '자유롭게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연설할 예정이지만 미국은 이미 이 각본에서 제외됐다고 분석했다.
이번 APEC 정상회담에서 일본과 캐나다, 멕시코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탈퇴 의사를 밝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발표할 예정이다. 또 중국과 인도, 일본, 한국 등 16개국의 지도자는 APEC 이후 필리핀에서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협정(RCEP) 타결을 위해 진전을 이루자고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TPP 회원국인 싱가포르의 리센룽 총리는 최근 워싱턴 방문 기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그 어떤 파트너보다 거대하다고 생각해 더 나은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결과 많은 파트너가 미국과 양자 협정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협상을 꺼려하는 것은 아시아 만이 아니다. 한 때 유럽연합(EU) 탈퇴 이후를 도모하기 위해 미국과 가까운 관계를 희망했던 영국은 그 기대를 일부 접은 상태다. EU 역시 미-EU간 최대 무역 협정인 TTIP 추진을 재개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미 EU 내에서 협정 조건을 두고 반대 여론이 높은 데다 트럼프 행정부의 호전적인 접근 방법으로 실무단 역시 난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8월에 시작된 캐나다와 멕시코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은 미국의 제안을 둘러싸고 격렬한 대립의 장으로 변질된 상태다.
대신 EU는 일본과 남미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 등과 협정을 마무리 짓고 호주, 뉴질랜드와 새로운 협상을 개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근접한 캐나다와 멕시코와는 무역 재협상 및 갱신 협상을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양자 협상에 집착함으로써 국제 통상 무대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EU와 일본, 중국 등은 디지털 무역과 같은 '21세기' 문제들을 해결하고 자국의 산업과 규제 표준을 타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새로운 무역 협정을 활용하고 있다.
EU의 경우 온라인 사생활 보호 뿐 아니라 샴페인과 페타 치즈와 같은 지역 상표권 보호에 대한 EU의 견해를 다른 경제권으로 전파하려 한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무역대표부 부대표를 지냈던 로버트 홀리먼은 국경간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과 같은 핵심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기술 기업은 정부의 무역 협상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는 기술 기업에 상당히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상품 무역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무역 협정들을 무효화하고 있는 사이, 나머지 전 세계 국가들은 향후 수십년을 내다보며 새로운 무역 규칙들을 써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7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일본과 무역은 공정하지 않다고 발언한 데 대해 이날 1980년대 일본은 미국 무역적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무역 불균형 이용을 위해 자유무역협정(FTA)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뉴스핌 Newspim] 이홍규 기자 (bernard02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