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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방대한 음악극의 창시자, 리하르트 바그너

기사입력 : 2017년11월14일 12:00

최종수정 : 2017년11월14일 12:00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19)

바그너는 기존의 오페라 음악을 보다 새롭고 독특한 형태로 혁신함으로써 음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된다. 우선 그의 오페라 작품들은 규모가 엄청나게 방대하다. 4부작 《니벨룽겐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는 공연이 장장 나흘에 걸쳐 이루어지는 작품이다. 즉 전야제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 첫날 밤 〈발퀴레 (Die Walküre)〉, 둘째 날 밤 〈지크프리트 (Siegfried)〉, 셋째 날 밤 〈신들의 황혼 (Götterdammerung)〉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르 또한 기존 오페라와는 사뭇 다른 독특한 형태인 ‘음악극(音樂劇)’이란 장르를 새로이 만들어냈다. ‘오페라(opera)’는 음악에 따라 전개되는 연극이며, 언어예술· 시각예술· 음악예술이 이상적으로 혼합된 종합예술이다. 이에 비해 ‘음악극(music drama)’은 대본의 사상적 내용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내용의 극적인 전개를 위해 음악을 활용하는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바그너는 음악극을 만들 때 전설의 이야기 중에서 결정적인 중요한 사건만을 취하여 줄거리를 단순화했으며, 인물의 동기부여 과정을 부각시켰다. 그는 이처럼 대본인 시극에 음악을 붙이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는데, 이는 자신이 존경하던 베토벤으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1829년, 그는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를 보고 음악과 연극을 결합한 새로운 양식의 극음악을 만들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갖게 되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피델리오》를 본 것을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강한 인상을 준 사건'이라고 회고했다.

바그너의 주요 작품으로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änder)》, 《탄호이저(Tannhäuser)》, 《로엔그린(Lohengrin)》,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그리고 4부작 《니벨룽겐의 반지》 등이 있다. 로엔그린에 삽입된 ‘신부의 합창(The Bridal Chorus)’은 오늘날 결혼식에서 신부입장 때 연주되고 있다. 참고로, 신랑신부가 결혼식을 마치고 행진할 때 연주되는 곡은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에 삽입된 ‘결혼행진곡(Wedding March)’이다.
바그너는 음악가로서는 보기 드문 문장가였다. 오페라 작곡가들은 대개 대본작가를 따로 두고 작업을 했는데, 바그너는 자기가 대본을 직접 썼다. 1846년에 작곡을 시작해 2년 만에 완성한 《로엔그린》은 바그너가 중세 기사문학과 서사시, 독일 설화를 바탕으로 쓴 대본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음악작품의 대본 이외에도 많은 예술론을 저술하였는데, 주요 저서로 《독일 음악론 (Über Deutsches Musikwesen)》, 《예술과 혁명 (Die Kunst und die Revolution)》, 《미래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der Zukunft)》, 《오페라와 드라마 (Oper und Drama)》, 《독일예술과 독일정치 (Deutsche Kunst und Deutsche Politik)》 등이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는 1813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경찰서기인 아버지의 아홉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고, 얼마 후 드레스덴으로 이사하였다. 9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바그너는 드레스덴 궁정 가극장에서 공연된 베버의 《마탄의 사수》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13세 때에는 셰익스피어와 괴테를 읽고서 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후 1833년부터는 오페라의 악장으로서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경력을 쌓아나갔다.
바그너가 23세가 되던 1836년 11월, 여배우 민나 플라너(Minna Planer)와 결혼을 한다. 결혼한 두 사람은 1842년까지 파리에서 거주하였다. 두 사람은 얼마 동안은 그런대로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리스트의 딸이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였던 코지마와 바그너의 애정행각이 본격화되면서 사이가 크게 벌어진다. 한편,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의 생활은 바그너에게 예술적 영감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무엇보다도 프란츠 리스트와의 만남은 그의 음악과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1842년 바그너는 드레스덴 궁정 가극장의 음악감독이 되어 드레스덴으로 돌아오게 된다. 거기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자신의 지휘로 초연했고, 그의 대표작이 된 《탄호이저》와 《로엔그린》을 작곡했다. 그러다 유럽혁명의 여파로 1849년 일어난 드레스덴 혁명에 참여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령이 내려진다. 이에 바그너는 리스트의 집에 잠시 숨어 있다가 스위스의 취리히로 간다.
1858년까지 이어지는 취리히 망명시절에 바그너는 악극의 이론적 기초인 종합예술론을 담은 《미래의 예술작품》과 《오페라와 드라마》 등의 저작을 저술하였다. 또한 《니벨룽겐의 반지》의 제1부 ‘라인의 황금’과 제2부 ‘발퀴레’ 등도 작곡하기 시작했다. 취리히에 머무는 동안 바그너는 그를 자기 집에 머무르게 하면서 경제적 도움을 주었던 오토 베젠동크의 부인 마틸다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이후 바그너는 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베젠동크 가곡집》과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담았다. 바그너는 훗날 코지마와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나자 딸의 이름을 이졸데라고 지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불륜관계를 잘 알고 있던 바그너의 아내 민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해 가증스런 커플의 이야기라는 비난을 퍼부었다고 한다.

바그너 페스티벌 축제가 개최되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전경 <사진=이철환>

1864년 추방이 해제되면서 바그너는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의 초청을 받고 1864년 뮌헨으로 오게 된다. 같은 해 자신의 열렬한 팬이던 루트비히 2세의 지원으로 바그너는 《탄호이저》를 공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당시 유부녀였던 코지마와의 부도덕한 애정행각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뮌헨 궁정의 대신들 또한 바그너를 좋지 않게 생각했다. 이런 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루트비히 왕은 바그너를 떠나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듬해인 1865년 결국 바그너는 뮌헨을 떠나 스위스 루체른으로 옮겨간다. 이 루체른에 머무는 동안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들(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등을 완성하였다.
1872년부터 바그너는 스위스 지역을 떠나서 독일 바이에른 주 남동부지역의 소도시 바이로이트로 거처를 옮긴다. 거기서 자신의 악극을 상연할 극장 건립을 추진하여 1876년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을 완성시켰다. 이 극장 개관기념으로 대규모의 음악극 《니벨룽겐의 반지》 전곡이 초연되었는데 전 유럽의 명사들이 몰려와서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1882년, 바그너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두 번째 작품으로 《파르지팔(Parsifal)》을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공연 기간 동안 심한 협심증으로 고생을 했다. 축제가 끝난 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났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마침내 1883년 2월 13일, 베네치아에서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바이로이트에 있는 하우스 반프리트(Haus Wahnfried)의 정원에 묻혀있다.

바그너는 워낙 자의식이 강하고 독선적인 성격이어서 대인관계가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종주의자인 바그너는 유대계 음악가들인 마이어 베버와 멘델스존을 매우 싫어해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또 동 시대를 살았던 같은 독일계 낭만주의 음악가이던 브람스와도 라이벌 의식이 매우 강해서 그 두 사람의 추종자들까지도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은 죽었다’고 외쳤던 염세주의 철학자 니체는 바그너의 루체른 시절 그를 만나게 된다. 당시 31살의 젊은이였던 니체는 열렬한 바그너 숭배자가 되어 그의 저작인 《비극의 탄생》에서 바그너를 찬양한다. 하지만 후일 바그너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비판자로 돌아서서 그의 종교적 편견과 반유대주의를 비난하는 《니체 대 바그너》를 발표했다. 이처럼 까칠한 성격인 바그너를 끝까지 이해하고 포용해준 유일한 사람은 그의 두 번째 부인이자 음악활동의 동반자 역할을 해준 코지마였다.

바그너와 코지마와의 애정행각은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코지마는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의 딸이다. 그녀는 1857년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다. 이후 리스트의 애제자인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와 결혼했으나 결혼생활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한스 뷜로와 코지마는 결혼기념 여행 중에 바그너를 방문하게 된다. 이때의 만남이 후일 코지마가 뷜로를 떠나 바그너와 결혼에까지 이르는 단초가 된다. 바그너는 코지마와 오랜 동거생활을 해오다 전처인 민나가 죽자 1870년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이 결혼으로 인해 리스트는 친구 사이인 바그너와 절교하게 된다.
리스트는 이 결혼을 여러 모로 못마땅하게 여겼다. 자신의 딸인 코지마는 바그너보다 24살이나 어렸고, 사위가 된 바그너는 자신보다 불과 두 살 아래인 친구이자 동료였다. 거기다 전 사위인 한스 폰 뷜로는 자신뿐만 아니라 바그너 또한 아끼던 제자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그너에게 있어 한스 뵐로는 그의 작품들을 성공적으로 연주하여 빛을 보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이 둘의 결합을 못마땅해 한 것은 비단 리스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여론도 이들을 격렬히 비난했고, 결국 루트비히 왕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사유가 되었다.
우여곡절을 거친 결혼이지만 당사자들은 매우 행복했다. 특히 코지마는 열정적으로 바그너의 음악활동을 내조했다. 1883년 바그너가 죽자 코지마는 바이로이트 축제를 맡아 1908년 아들이 이어받을 때까지 계속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그녀는 바그너보다 47년을 더 오래 살면서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여주인으로 남편의 작품을 후세에 길이 남기는 데 힘썼다. 나중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바이로이트에서 죽었다.

바그너의 이념적 성향은 오늘날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바그너는 게르만민족 우월주의자이자 반 유대주의자였다. 그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유대인 음악가인 마이어 베버와 멘델스존을 싫어했다. 또한 그의 음악극들이 대부분 게르만의 신화와 전설을 소재로 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듯이 그는 철저한 독일민족주의 사상의 신봉자였다.
이러한 바그너의 성향과 작품들을 나치정권과 히틀러는 잘 활용하였다. 히틀러는 바그너를 매우 좋아했는데,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40회 이상 관람했다고 한다. 히틀러는 자신이 바그너의 음악에 열광하는 이유를 “인간의 감정을 뒤흔들고 독일인의 위대함을 드러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민족의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음악이 바그너의 음악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음악을 나치 집회는 물론 유대인 학살 수용소에서도 틀었다. 따라서 유대인과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바그너 음악은 악몽 그 자체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직도 바그너 음악의 공연이 터부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유대계 지휘자인 바렌보임은 2001년 이스라엘 국립음악축제에서 바그너의 대표작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연주하였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렌보임이 홀로코스트의 숭고한 정신을 모독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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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X는 주로 ATM(등가격) 부근 옵션의 프리미엄 시세를 바탕으로 산출되기 떄문에 이미 멀찍이 있던 외가격에서 경보음을 낸 스큐지수보다 한발 늦다. ATM 옵션은 현재 주가와 행사가격이 '거의 같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장 옵션시장의 주가 상승과 하락에 대한 '양방향 베팅' 상황을 보여준다. 스큐지수가 건물의 '화재감지기'라면 VIX는 화재가 난 뒤에 내부 온도를 보여주는 '온도계'와 같은 셈이다. '스큐지수의 하락→S&P500의 급락+VIX 급등'의 순서는 2018년 8월의 급락장에서도 동일하게 실현됐다. 최근 스큐지수가 최고치를 찍고 하락한 것은 주식시장이 이 패턴을 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VIX는 스큐지수가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달 24일 14를 기록했다가 현재 19.5로 올라선 상태다. 아직은 주식시장의 높은 변동성을 예고한다는 '20'을 넘어선 단계는 아니지만 방향성 자체가 위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S&P500도 지난달 6일 사상 최고가에서 4% 떨어지는 등 상기의 연쇄 흐름에 동참한 모습이 역력하다. 물론 스큐지수가 과거의 폭락장이나 거친 시세 흐름을 항상 예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지연 우려와 시장금리의 급등, 위안화 약세, 주식시장의 높은 밸류에이션, 조만간 출범하게 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의 관세 염려 등 주가 하락을 시사하는 퍼즐들이 짜맞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급격한 시세 변동 위험이 현실화될 개연성을 높인다. 특히 위안화 약세의 파급력은 2015년 갑작스러운 평가절하나 2018년 중반 급격한 약세, 2019년 '7위안 돌파' 등의 사례를 통해서 목도한 바 있다. 옵션시장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닐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재료들이다. 4. 실질금리의 중력장 1월 중순에 진입한 현재는 불안감이 들불처럼 번지기 쉬운 시기라는 점에서 스큐지수 경고에 담긴 의미를 배가시킨다. 과거 통계상 계절적으로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구간의 초입이다. 페퍼스톤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3년까지 VIX 추이를 월별로 평균해 연중 추이로 그려본 결과 1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연초에는 기관투자자가 새로운 투자 전략을 실행하거나 기존 포지션을 조정하고, 또 관련 기간에는 기업의 결산 보고가 맞물려 있어 시세가 각종 재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위험자산군의 시세를 주무르다시피하는 '실질금리'가 뜀박질을 재개한 점은 계절성의 현실화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 미국 물가연동국채 10년물 금리로 본 실질금리는 지난달 초순 1.89%에서 중순 2.25%로 급히 올라섰다가 이달 초 숨고르기를 거친 뒤 최근 7일여만에 2.32%로 '레벨업'했다. 지난달 초순부터보자면 한 달 만에 43bp가 오른 셈이다. 통상 장기국채의 명목 금리가 오른다고 해도 대게 인플레 전망을 반영해 상승한 결과여서 실질금리 상승폭은 상쇄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실질금리 변동성이 작은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 달 만에 43bp라는 상승폭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하트넷 전략가의 표현을 빌려쓰자면 최근의 금융시장 상황은 '터너(전환점)' 임박을 시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서 하트넷 전략가는 실질금리 2.5%를 주시해야 할 지점으로 꼽은 적이 있는데 2.5%에 도달하면 금융시장의 위험자산 회피 성향이 더 강해질 것으로 봤다. 2.5%는 2023년 10월 하순에 기록한 최근 10년 기준 전 고점에 해당한다. 당시 실질금리는 같은 해 7월 1.48%에서 2.5%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같은 기간 S&P500의 시세를 10% 떨어뜨린 배경이 됐다. 하트넷 전략가에 따르면 현재 실질금리는 이미 지난달 중순부터 2%대로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종전까지 주식시장의 시세가 어느 정도 방어가 됐던 것은 '강한 경제 펀더멘털이 실질금리 상승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종전의 고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면 내성 역할을 해왔던 투자자들의 믿음에 균열이 가해질 수 있다고 봤다. 스큐지수의 급등과 급락이라는 전조가 보여준 경고는 실질금리 2.5% 돌파와 함께 현실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bernard0202@newspim.com 2025-01-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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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샤오훙수 열풍에 고무된 중국매체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이른바 미국의 '틱톡(TikTok) 난민'들이 대거 샤오훙수(小紅書)에 가입하는 현상이 지속되자 중국 매체들이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틱톡이 오는 19일부터 미국 내 서비스를 종료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미국 내 틱톡 유저들이 중국의 또 다른 SNS인 샤오훙수의 글로벌 버전 '레드노트(RedNote)' 앱을 다운로드해 신규회원으로 가입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데이터 조사기관인 센서타워의 조사에 따르면 1월 8일부터 14일까지 미국 내 사오훙수 앱 다운로드 건수는 전주에 비해 20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중국 메이르징지신원(每日經濟新聞)이 17일 전했다. 전년 대비로는 30배 증가했다. 이달 들어 샤오훙수의 다운로드량 중 22%가 미국에서 이뤄졌다. 이 수치는 전년 동기에는 2%에 불과했다. 미국 내 틱톡 난민들이 샤오훙수로 대거 이동하면서 샤오훙수의 다운로드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중국은행보험보는 이날 샤오훙수 앱은 현재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이탈리아 등 87개 국가에서 다운로드 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39개 국가에서도 10위 이내의 수위권에 분포하고 있다. 특히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신규 가입자가 70만 명을 넘어섰다. 이같은 소식에 중국 증시에서는 샤오훙수 관련주가 연일 급등하고 있다. 현재 샤오훙수는 글로벌 유저들을 위해 원클릭 번역 기능을 개선하고 있다. 샤오훙수 열풍이 이어지자 중국 매체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매체들은 미국이 2018년 이후 반중 정책 수위를 지속 높이고 있지만, 민간에서는 활발한 소통과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며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17일 환구시보는 논평기사에서 "미국의 많은 유저가 자신들을 틱톡 난민이라고 자칭하며 샤오훙수로 몰려들고 있고, 이는 뜻하지 않게 미중 양국 국민의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매체는 "미국 유저의 후기를 보면, 이들은 낯선 중국어 플랫폼에 접속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했지만, 중국인의 친절한 응대에 놀라워했고, 중국인의 개방적인 태도에 경계를 풀게 됐다"며 "양국 네티즌의 교류 열기가 폭발적으로 높아졌고, 대화 주제는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미국의 정치인들은 지속적으로 중국을 비방해 오고 갖가지 부정적인 표현을 쏟아내고 있지만, 양국 국민 간에는 교류 협력을 심화하려는 의지가 강해지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이어 "샤오훙수 현상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수립할 때 좋은 참고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SNS인 샤오훙수 자료사진 [사진=바이두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1-1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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