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황수정 기자] '세계적인 음악가' '20세기 현대 음악의 5대 거장' 등으로 평가받다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50여년 '간첩'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던 작곡가 윤이상. 온갖 수식어 뒤에 숨겨진 그의 진짜 삶은 어땠을까.
경기도문화의전당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공동기획한 연극 '윤이상;상처입은 용'이 공연 중이다. 세계적인 작곡가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조국에서는 과거 북한 방문과 동백림 사건 연루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윤이상의 삶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 윤이상에 대해 조명한다.
작품은 노년의 윤이상(이찬우)이 작가 루이제 린저(박현숙)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시작된다. "누가 내 얘기를 궁금해나 할까요?"라고 물으며 조심스레 펼쳐놓는 그의 삶은 담담한 말투와 무척이나 대조된다. 베를린에서 시작해 서울, 북한, 통영, 일본을 거쳐 다시 독일로 향하는 그의 삶의 궤적은, 윤이상의 고통과 아픔은 물론 당시의 비극적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저 음악으로만 느꼈던, 과거 자료를 통해서만 알아왔던 윤이상을 무대 위에서 6세, 17세, 21세, 29세, 35세, 47세까지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음악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유학 시절, 연애, 독립 운동, 북한 방문에 이어 사형선고를 받기까지. 다사다난한 그의 삶이 작가의 상상력을 덧대 함축적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한 사람의 일생을 100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담기에 간혹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노년의 윤이상이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화자가 되어 부연설명을 곁들여 이해를 돕는다. 단편적인 과거의 회상들은 오히려 당시의 사건들을 부각시키며, 윤이상이 '왜, 어떻게,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윤이상이라는 역할만으로도 배우가 7명, 여기에 친구나 부모, 교민들 등 주변인물까지 많은 배우가 등장하면서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간소화한 무대 장치가 이를 상쇄한다. 온통 하얀 세 벽으로 구성된 무대는 윤이상의 기억의 통로이자, 기억을 비추는 스크린이 된다. 조명을 통해 장소 이동을 표현하고, 윤이상의 실제 사진이나 영상 자료를 더해 현실감을 더한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뒤에 첼로, 거문고, 피아노, 타악기가 숨겨져 직접 연주를 선사한다. 윤이상의 음악은 물론 새롭게 작곡한 곡은 윤이상의 생애와 맞물리며 절절한 아픔과 감동을 배로 느끼게 만든다. 특히 첼로는 윤이상의 자아를 대변하는 악기로, 구슬픈 가락이 그저 음악만 하고 싶었던 윤이상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전하고 있다.
'용이 상처를 입어 날아오르지 못하고 산과 구름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는 태몽을 닮은 윤이상의 삶. 실제 그의 삶은 어땠을지 알 수 없지만,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잠시나마 스스로 생각해보길 추천한다. 연극 '윤이상;상처입은 용'은 오는 29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경기도립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