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현경 기자] “공예가 다른 게 없어요. DIY, 'Do it Yourself' 아시죠?”
내 집 꾸미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제이쓴을 기억한다. 이미 그의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서 다뤄졌다. 그는 JTBC ‘헌집 줄게 새집다오’ 출연해 인테리어 꿀팁을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MBC ‘나혼자산다’에서는 재료값 97만원으로 강남의 새 러브하우스를 꾸며는 기적을 보여줬다. DIY가 무엇인지, DIY의 재미를 몸소 직접 보여준 그다.
작가에서 디자이너로, 지금은 강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제이쓴. 올해 초부터는 서울시 디자인위크 공예전의 총괄 디렉터를 맡아 박람회를 구성했다. 정규 예술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이 자리를 얻게 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그 스스로도, 서울디자인재단에게도 모험이었다.
서울디자인재단으로부터 총괄디렉터 제안이 왔을 때 제이쓴은 버킷리스트를 달성하기 위해 세계 여행 중이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그는 서울행 티켓을 손에 쥐었다.
“남미, 아프리카, 유럽까지 쭉 둘러보는 중이었어요. 남미에 있을 때 서울디자인재단에서 공예박람회 총괄디렉터직 제안이 왔어요. ‘여기서 여행을 멈추어야 하나’, ‘왜 나에게 이런 제안이 왔을까’ 수많은 생각을 했죠. 마음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는 예술 전공자도, 순수 예술 전통파도 아니에요. 하지만, 미팅 후에 디렉터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이번 전시가 저의 열린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고 공예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사색의 방에서 휴대폰을 보면서 변기에 앉은 제이쓴 |
제이쓴이 지난 7개월간 열과 성을 쏟은 서울디자인위크 공예디자인박람회가 21일 문을 열었다. ‘2017 서울 생활의 발견-은밀한 공예’ 주제 아래 변기도 공예품이 될 수 있다는 재미있는 시선을 가져왔다. 지난해 공예박람회는 ‘식(食)’을 주제로, 올해는 주(住)라는 큰 구성 아래 화장실이란 공간을 전시장으로 옮겼다. ‘은밀한 공예’의 총괄디렉터를 맡은 제이쓴. 그의 재미난 상상이 담긴 화장실이 쇼처럼 펼쳐진다.
“풀과 꽃이 무성한 '에덴의 동산', 과감한 색과 디자인이 만난 '원초적 상상', 불이 다 꺼진 '고독한 사색', 화장실 벽면을 내 마음대로 낙서를 해볼 수 있는 '욕망의 공간'이 있어요. 제가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에덴의 동산이에요. 실제 꽃과 풀을 넣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할 수가 없었어요. 어쨌든, 선과 악이 없던 시절의 화장실을 꾸며내는 작업을 하는 것 만으로도 꽤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고독한 사색'에 가실 때는 문을 닫고 바닥에 깔린 야광봉을 지나 변기에 한 번 앉아보세요. 그 시간을 한번 느껴보길 바라요.”
희한하게도 쇼룸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전시되고 있다. 실제로 화장실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쇼룸은 전시장을 전체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모서리 지점에 설치됐다. (바닥에 쇼룸 안내도가 표시돼있다). 그 이유를 제이쓴이 알려줬다. 전시장에 휴지월이 생기게 된 배경도 전했다.
휴지 월 앞에 선 제이쓴 |
“평소에는 전시장(알림2관)을 컨퍼런스룸으로 활용합니다. 원초적 상상, 에덴의 동산이 설치된 이 쇼룸은 보통 때는 사무실로 쓰이고요. 문이 있으니, 화장실 쇼룸으로 ‘딱’이었죠. 휴지월(Wall)도 주목해 주세요. 이 역시 문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담 뒤로 ‘똑똑한 화장실’ 이야기가 펼쳐지죠. 이 공간에는 문이 따로 없기 때문에 크리넥스로 벽을 설치했어요. 상황만 된다면 조명을 비춰 컬러풀 월을 하고 싶었는데, 법의 문제가 있어서 하지 못했네요. 그래도 박람회 주제처럼 ‘은밀’한 공간으로 충분한 것 같은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외에도 화장실의 역사, 공공 화장실, 똑똑한 욕실, 인생 욕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공예박람회인 만큼 공예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총괄 디렉터인 제이쓴은 ‘공예’의 범위를 넓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손으로 만들고 해결하는 모든 행위를 ‘공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DIY다.
“DIY에 관심은 많으시죠? 그런데, 공예라고 하면 어려워해요. 예스러운 느낌도 있고요. 때문에 요강이나 빗자루를 떠올리기도 하죠. 알게 모르게 프레임이 씌워진 거로 보여요. 혹은 잘못된 학습의 결과일 수도 있고요. 스펙트럼을 넓혀봅시다. 우리가 만드는 것이 모두 공예라고요. 요리가 공예가 될 수도 있고요. 공간을 만드는 것도 공예라고 생각해요. 어려워할 필요도 없어요. 관심만 가진다면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디자인위크는 21일부터 27일까지 DDP에서 열린다. 7개월간의 대장정을 선보이는 자리가 7일밖에 되지 않아 아쉬운 마음도 한쪽에 있다. 콘셉트부터 디자인, 도면 체크, 셀러 선택, 글자체 선정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던 전시다. 그에게도 도전이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에너지를 쏟아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제이쓴은 이번 전시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맺고 싶다고 했다.
“작가이면서 디자이너, 그리고 지금은 강단에도 서고 있어요. 교수를 했더니 디렉터로도 활동하게 됐고요. 이 자체가, 이런 제 삶이 참 재밌어요. 전시장에는 제가 아마 종종 들릴 거예요. 사색의 공간 바닥에 깔린 야광봉도 봐야하고요(웃음). 3만개가 깔려있습니다. 와서 낙서의 방에서 마음껏 놀고 에덴의 동산도 들리세요. 디자인으로 즐거운 관계 맺고 소통합시다.”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사진 서울디자인제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