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황수정 기자] "그럼 당신은 정확히 뭡니까"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환상인가.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환상을 만들어내고, 이를 얼마나 굳게 믿을 수 있을까. 현실을 부인하고 자결을 선택할 만큼.
연극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연출 김동연)는 중국계 미국작가 '데이비드 헨리황'의 대표작으로, 국가 기밀 유출 혐의로 법정에 선 전 프랑스 영사 '버나드 브루시코'와 중국 배우 '쉬 페이푸'의 충격적 실화를 모티브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차용해 꾸며진 작품이다.
중국 주재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연기한 경극 배우 송 릴링을 보고 첫 눈에 매료된다. 완벽한 동양 여성 모습의 송을 통해 르네는 자신의 남성적 우월감을 느끼게 되고, 이후 20여 년을 함께 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송은 여장남자였고, 르네는 국가 기밀 누설죄라는 중대한 사건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되며 파국을 맞는다.
'엠. 버터플라이'는 1960년대 당시 서양인들이 동양에 가진 편견, 특히 동양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르네는 스스로를 '서양 악마'라고 칭하며 약하고 순종적인 동양 여성 송에게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며 위로받고 싶어 한다. 송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더 완벽하게 그의 환상을 채워주며 기묘한 관계를 이어간다.
극 중 극 형태로 진행되는 오페라 '나비부인'은 작품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동시에, 서양이 동양 여성에 가지고 있는 편견을 비판하는 도구적 장치다. 송은 "금발 미녀가 왜소한 동양남자를 사랑하다가 버림받자 다른 금발 미남의 구애를 마다하고 자결한다면?"이라고 묻는다. 대답하지 못하는 르네는, 당시의 보편적 정서를 대변한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욕망으로 인해 만들어진 환상 속 세계는 언제 깨질 지 몰라 위태로워 보이지만, 또 그만큼 아름답다. 그래서 이후 현실을 마주할 때의 좌절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이 서서히 이성을 마비시켜 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팽팽한 긴장감은 물론, 극의 몰입도와 설득력을 높인다.
작품은 흡사 관객과 이야기를 하듯 진행돼 극의 재미를 높인다. 여기에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초반 소심하다가 광기 어린 캐릭터로 변해가는 르네는 배우 김주헌, 김도빈이, 완벽한 여성이었던 송 릴링 역은 배우 장율, 오승훈이 연기한다. 다이나믹한 감정 연기는 물론, 섬세한 여성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또 화려한 미장센도 인상 깊은 요소. 나선형 계단을 통해 2층으로 구성돼 오페라 '나비부인'이나 여성 잡지, 경극 등을 펼치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은, 시공간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무엇보다 송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하는 순간, 그리 짧지 않은 시간동안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을 자아낸다.
"때로는 불순한 감정에 양쪽 다 매혹될 때도 있다" 환상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동서양, 남성과 여성의 편견은 물론 인간의 본질적 심리와 욕망을 심도 있게 보여주는 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오는 12월 3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연극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