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작가 작품과 드로잉 <사진=환기미술관> |
[뉴스핌=이현경 기자] 현대 미술 작가들의 작업장은 어떤 모습일까. 완성된 결과물로 작가를 바라보는 관람객들은 작가의 작업 사정까지는 다 알진 못한다. 작가의 창작 과정이 머무는 아틀리에. 그곳을 한 번이라도 들려본다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지도 모른다. 작가의 고집과 고심, 숨결이 묻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 작가들의 아틀리에가 환기미술관으로 들어왔다. ‘사유 창작 공간 노트’라는 테마 아래 진행되는 이 전시는 김환기 작가를 비롯해 김차섭, 임충섭, 김명희, 신성희, 이강소 작가의 아틀리에를 선보인다. 이 작가들의 공통점은 뉴욕에서 활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각의 색은 뚜렷하다. 저마다의 생각이 담긴 창작공간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불어 작품을 완성하기 전까지 과정이 만만찮았음을 짐작케한다.
환기미술관을 바로 들어서자마자 김환기 작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면점화가 탄생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유하던 드로잉과 청, 적, 흑색의 숭고의 미학이 담긴 1970년대 점화를 볼 수 있다. 대형 전면점화를 완성하기까지의 그의 습작과 흔적이 사면을 감싸고있다.
김치섭 작가 아틀리에 재현 <사진=이현경 기자> |
다음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김차섭 작가의 아틀리에다. 그는 뉴욕과 춘천의 작업실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는 기하학, 천문학, 지리학, 역사학을 넘나들며 인류문명 전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삼각자, 지구본, 각도기가 그의 책상 위에 올려진 이유다. 그의 아틀리에는 연구실을 연상케 한다.
그가 작품을 그리기 전 기록한 노트도 한 벽면에 전시되고 있다. 놀랍게도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한자로도 표기했다. 여기에 그의 손으로 쓰고 그린 스케치까지. 작품을 완성하기 전의 무수한 고민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이는 그의 노트 두 권에서 발췌한 것으로 최초로 전시되고 있다.
김차섭 작가의 노트에 기록된 고민의 흔적들 <사진=이현경 기자> |
김차섭 작가의 작품에서는 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손은 그리스신화에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와 연관이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숨겨둔 불을 인간에게 준 장본인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뜻은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고 이를 동일시하고 있다. 그의 자화상을 손으로 표현하고 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 강원도 내평리(그의 작업실)를 가리키는 손 등 스토리에 맞게 그려졌다.
임충섭 작가 설치미술 '민들레' <사진=이현경 기자> |
2층으로 올라가면 임충섭 작가의 설치 미술을 볼 수 있다. 임충석 작가는 ‘사이’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해오고 있다. ‘사이’는 관계의 거리를 의미한다. 즉, 나와 너의 거리, 나와 자연의 거리, 자연과 자연의 거리에 대한 관점을 작품에 녹이고 있다. 그가 2001년부터 자연과의 거리를 표현하는 20여장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그 오른편에는 설치작품 ‘민들레’가 놓여있다. 삭막한 도시의 거친 땅에서 쇠로 피어난 대형 민들레가 돛단배 모양의 창문을 통해 대자연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설치 구성으로 표현됐다.
김명희 작가 전시 <사진=환기미술관> |
김명희 작가의 아틀리에도 볼 수 있다. 그의 창작 스토리는 1990년 강원도 내평리 폐교 작업실과 마주하면서 시작된다. 뉴욕에서 한국으로 잠깐 들렸던 그때, 그는 신문에서 강원도 내평리 폐교 매입 관련 소식을 접하고 그의 작업실로 정한다.(김차섭 작가와 김명희 작가는 부부 사이이다)
폐교에서 흑칠판과 오일파스텔을 마주한 것이 새로운 작업의 시작이었다. 캔버스에서 벗어나 칠판에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흑칠판에 오일파스텔로 그린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도 놓여있다.
그의 작품에는 종종 아이들이 등장하곤 한다. 사연을 이렇다. 그가 집안 어른으로부터 화각함을 받았는데, 그 화각함에 아이가 그려져있었다. 이를 인상깊게 봤고 자신의 작품에 표현하기 시작했다.
또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해외로 많이 다닌 경험을 작품에 녹여내내고 있다. 세계지도 위에 가상의 철도를 설치하고 인류의 문명사를 횡단하는 메타여행을 담은 '메타 트래블 스튜디오(Meta Travel Studio)'가 그 예다.
신성희 작가 전시 <사진=환기미술관> |
3층에는 신성희 작가의 작품이 펼쳐져 있다. 자신을 되살리고 성장시키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는 파격적인 조형시도를 끊임없이 한다. 1970년에는 마대 위에 마대를 그린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 ‘회화 Peinture’로부터 해체와 재해석을 통해 확장된 ‘회화 Peinture’ 시리즈를 펼쳤다.
본 전시에는 신성희의 예술 사유의 구현이라 할 수 있는 ‘누아주(nouage)’에 함축된 작가의 집요하고 치열하면서도 절제된 창작물이 볼 수 있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이를 다시 찢어 2차 창작물을 만든 작품들이다. 이를 통해 작가의 남다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이강소 작가 전시 <사진=환기미술관> |
이강소 작가의 아틀리에로 전시는 마무리된다. 이번 전시에는 이강소 작가의 2017 신작 ‘청명’을 볼 수 있다. 이강소 작가는 일필휘지로 작품을 그린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에서는 역동성이 느껴진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여백의 미를 더욱 신경 써서 봐주길 원한다.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은 작가의 정신과도 부합한다.
2017 환기미술관 특별전 ‘사유 창작 공간 노트’는 오는 11월12일까지 열린다.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