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황수정 기자] "우리가 원하는 것과 우리가 얻게 될 것. 그 사이에는 원죄가 있어. 죄의식이 그 둘의 유일한 연결고리지." 3일간 내린 비로 세 사람의 운명이 뒤엉켰다. 이 운명은 그들과 그 자식들에게 어떤 죄의식을 갖게 만든 걸까.
연극 '3일간의 비'(연출 오만석)는 미국 유명 건축가의 아들이 우연히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과거의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3일간 내린 비와 그 사이 일어난 한 사건으로 부모와 자식의 운명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보여준다.
등장인물은 단 3명. 이들이 1995년 현재의 자식 역할과 1960년 과거 부모의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건축가 '네드'와 그의 아들 '워커'는 최재웅, 윤박이 더블캐스팅 됐고, '라이나'와 '낸' 모녀(母女) 역에는 최유송, 이윤지, '테오'와 '핍' 부자(父子) 역은 이명행과 서현우가 맡았다.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돌아온 워커가 우연히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1960년 4월 3일에서 5일, 삼일간 비'라는 건조한 기록, 일기(日記)가 아닌 일기(日氣)예보, 마치 암호처럼 씌여진 아버지의 일기장은 진실을 파헤치는데는 부족하지만, 워커는 유일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워커는 자신이 갖고 싶었던 '제인웨이 하우스'가 누나 낸이나 자신이 아닌 아버지 친구의 아들 핍이 상속받게 되자 분노한다. 이들의 갈등은 세 사람의 현재 상황과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행복보다는 우울감이 지배적인 이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허름한 아파트의 암울함과 너무나 동화된다.
2막에서는 세 사람의 부모 네드, 라이나, 테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두컴컴 했던 아파트에 생기가 더해지고, 캐릭터 모두 눈에 띄게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3일간의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관객들은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 더욱 집중하게 된다. 창밖으로 흐르는 진짜 빗줄기와 빗소리, 때로는 관객 위에도 비추는 조명의 조화는 실제인양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배우들의 연기는 무대 장치와 의상, 조명 등의 변화가 없다해도 누구나 1인 2역, 각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다. 특히 윤박은 충격적일 정도. 그는 말더듬이 '네드'를 연기할 때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이윤지 역시 만만치 않은 내공으로 안정적인 연기를 펼친다. 그들 사이에서 서현우는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유쾌하게,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일기장의 함축적 기록만으로 부족한 부분은 대사로 메운다. 한층 빨라지고 대사 양도 많지만, 배우들은 마치 '티키타카'를 하듯 거침없다. 관객들은 저절로 그들의 호흡에 함께 맞추게 되고, 몰입도는 더욱 높아진다. 오이디푸스, 하이데거, 니체, 레이놀즈 등이 언급되며 철학적이고 난해한 대사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설명을 더하려는 노력도 보인다. 미국 극작가 리차드 그린버그의 원작은 더욱 장황하고 어렵다.
공연 중 라이브로 피아노 연주가 더해지는 점도 눈에 띈다. 단순히 배경음악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극의 일부가 되어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며 생동감을 높인다. 때로는 흐느끼 듯이, 때로는 춤을 추듯 기쁘게,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은 무대 위 감정선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다만 현재-과거-현재의 보편적 구성과 달리, 과거에서 끝을 맺는 '3일간의 비'는 깊은 여운을 주면서도 어딘가 아쉽다. 1막에서 흘린 여러 퍼즐을 2막에서 짜맞춰 완성시켜야 하는데, 궁금증을 충분히 해소해주지 못한 느낌이다. 물론 장면 장면을 곱씹으면서 다시 한 번 대사를 떠올려보면 진실을 못 찾을 것도 없다.
극중 워커가 "비밀은 없어. 비밀이 아니라 몸짓, 충동, 과장, 변덕일 뿐이야"라고 한 말에 낸은 "비극이네"라고 답한다. 이들이 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 진실을 찾았을 지, 그리고 이는 부모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까지 비극이 되었을 지, 결론은 관객들의 몫이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악어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