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황수정 기자] 과거의 영광을 잊어야 산다.
요즘 예능계에서 지상파는 과거의 영광에만 매달려 있고, 케이블이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은 새로운 것들을 자꾸 시도하고 있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 올드해진 지상파가 살아남으려면 뒤만 보지 말고 신선함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
현재 인기리에 방송 중인 지상파 3사의 대표 예능들을 보면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작품상을 수상했던 SBS '미운 우리 새끼'를 제외하곤 대부분 수 년간 방송된 장수 예능이다. 사실 '미운 우리 새끼'도 오래된 스타들의 색다른 면을 발견한 것과 그들의 어머니를 발굴해낸 것 외엔 관찰 버라이어티라는 큰 차별점이 없는 포맷이다. 이런 비슷한 류는 SBS '불타는 청춘'을 들 수 있다. 과거 인기가 높았던 중장년의 스타들을 모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는 높지만, 따지고 보면 신선함이 아닌 향수가 주무기다.
KBS 2TV '해피투게더3'는 더 큰 문제다. 여러 차례 개편을 통해 코너와 구성을 바꿨고, 현재 1부 토크쇼와 2부 전설의 조동아리로 나눠져 있다. 특히 '전설의 조동아리'는 유재석, 김용만, 박수홍, 지석진, 김수용의 사설 모임 '조동아리' 멤버들이 MC로 대거 출연해 과거 인기가 높았던 프로그램 포맷을 재현한다. 과거 지금보다 훨씬 시청률이 잘 나오던 시절 코너를, 과거 잘 나갔던 MC들이 다시 한 번 꾸미는, 말 그대로 과거의 영광에 기댄 안일한 기획이다.
이는 앞서 MBC에서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영광을 재현하려고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신설했지만, 시청률 부진으로 6개월만에 쓸쓸한 종영을 맞이한 사례를 떠올리게 만든다. MBC의 경우 색다른 콘텐츠로 인정받았던 '마이리틀텔레비전'이 지난 6월 종영했고, 그나마 신선하다고 평가받던 '세모방' 역시 송해, 이상벽, 허참, 임백천 MC에서 다시 '일밤'의 대부 이경규로 바뀌게 됐다. 이경규는 '일밤'에서 '몰래카메라'부터 '간다투어' 등 여러 가지 코너로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긴 하지만, 결국 또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반면 케이블과 종편은 다채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 tvN의 경우 나영석이라는 스타PD의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시리즈', '윤식당'에 이어 '신서유기' '알쓸신잡'까지 먹방, 쿡방, 여행에 교양까지 다양하다. 이외에 '문제적 남자'도 색다른 재미를 안기며 120회를 넘겼다. 종편의 경우 특히 JTBC가 예능을 선도하고 있다. '더 지니어스' '크라임씬' 시리즈는 물론, '냉장고를 부탁해' '비정상회담' '뭉치면 뜬다' 한끼줍쇼' 등. 최근에는 '효리네 민박'과 '비긴어게인'의 기세도 무섭다.
케이블과 종편은 지상파의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함과 다양성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지상파 PD들의 케이블 혹은 종편 이적이 이제는 놀라운 일도 아니다. 시청률 또한 이제는 지상파를 위협할 정도다. 한때 30%가 넘었던 KBS 2TV '1박2일'은 현재 반토막이 났으며, SBS '런닝맨'은 6.1%(그것도 1부는 4.1%)다. 이는 '효리네 민박' 6.9%보다도 낮은 수치다. 더이상 사람들은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 구분 없이 재미를 찾아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지상파는 선도한다기보다 기존의 예능을 유지해나가는 쪽이다. 주말 예능만 봐도 좋게 말하면 '장수 예능'이지만 너무 비슷한 예능이 반복되고 있다. 지상파는 시청층 자체가 연령대가 있기 때문에 이를 맞추기 위해 복고 트렌드도 생기고, 옛날에 잘 나갔지만 한때 안 보였던 스타들이 다시 등장하는 경향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케이블이나 종편, 특히 JTBC는 지상파와 플랫폼이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 시청층을 자부하기 어렵다. 대신 찾아보는 시청층을 잡아야 한다. 이들은 연령대가 확실히 젊다. 그 때문에 뭔가 새롭게 시도하려는 예능이 많다"며 "똑같은 출연진이 나왔음에도 다른 느낌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가수 이효리가 '해투'에 나왔을 때는 예전 토크쇼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면, '효리네 민박'에서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미 여러 차례 문제점이 지적됐고,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쉽사리 변하기 힘든 건 결국 제작 환경 때문이다. 오래된 만큼 고착화된 조직문화, 많은 사람들에 의해 굳어진 관습 등 지상파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더이상 지상파라는 이름만으로 통했던 시절은 지났다.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는 노력이 없다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각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