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박지원 기자] 일흔을 훌쩍 넘긴 배우 백일섭은 한 예능에서 “졸혼 후 혼자 살고 있다”고 고백하고,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는 따로 떨어져 지내면서 부부관계를 되돌아보는 졸혼을 체험한다.
방송가에 ‘졸혼’ 바람이 거세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의 ‘졸혼’. 이혼과는 다른 개념으로, 혼인관계는 유지하지만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말한다. 최근 달라진 결혼 풍속도를 녹여낸 예능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백일섭은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이하 ‘살림남2’)에서 졸혼 후 혼자만의 일상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서로 예의를 지켜가며 정답게 살면 같이 사는 게 좋지만 나는 성격상 그럴 수가 없었다”며 아내와 졸혼을 하게 된 이유를 고백했다.
백일섭은 40여 년간 함께 살았던 집은 아내에게 선물하고, 따로 집을 얻어 강아지와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200만 원에 달하는 쌍둥이 손자 양육비를 책임지는 등 집을 나와서도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
방송에서는 백일섭의 싱글 라이프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홀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요리 수업을 받고,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를 하는 모습을 통해 노년에도 충분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1년 반 만에 찾아간 옛날 집 앞에서 서성이다 결국 아들만 살짝 불러내는 모습으로 애잔함을 불러일으켰다.
‘졸혼’ 예능의 시초인 ‘살림남2’가 방송된 뒤 시청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쏟아냈다. 각종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백일섭 졸혼 이유를 들으니 그 선택에 이해가 갔다”, “현실적인 일상을 보며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글이 도배됐다.
종합편성채널 MBN 역시 ‘졸혼’을 주제로 한 예능을 선보였다. 스타부부가 졸혼을 체험해보는 ‘따로 또 같이 부부 라이프-졸혼수업’(이하 ‘졸혼수업’).
방송에서는 결혼 25년차 배우 조민기와 그의 아내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선진이 졸혼수업을 받는 과정이 그려졌다. 또 다른 커플은 배우 김정현과 리포터 출신의 아내 김유주. 김정현은 스물여섯 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 육아에 지친 아내에게 자유를 선물했고 아내는 잠시 잊고 살았던 자신만의 인생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MBN 홍보 김소영 PD는 “‘졸혼수업’은 365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떨어져 지내며 각자의 시간을 갖고, 더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해 돌파구를 찾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흔히 ‘졸혼’이라고 하면 별거나 이혼으로 가는 전 단계로 생각한다. 그만큼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면서 “그런 생각들을 바로잡고 보다 긍정적인 메시지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KBS 2TV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는 ‘졸혼’을 주제로 한 에피소드로 시청자들의 큰 공감을 얻었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평생을 가족밖에 모르고 살아온 성실한 아버지와 아내 영실, 개성만점 4남매 집안에 어느 날 아이돌 출신 배우가 얹혀살며 벌어지는 일상을 담은 드라마. 자식 세대의 결혼 인턴제, 부모 세대의 졸혼 등 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극중 무심한 남편 강석우와 그런 남편 때문에 울분이 쌓인 아내 송옥숙의 계속된 기싸움은 우리 부모 세대의 현실을 트렌디하게 담아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졸혼’과는 다르지만 부부가 떨어져 지낸다는 의미에서 같은 선상에 있는 ‘별거’를 콘셉트로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E채널 ‘별거가 별거냐’는 결혼 14년차 부부 남성진-김지영, 결혼 19년차 부부 이철민-김미경, 결혼 11년차 부부 사강-신세호 등 세 쌍의 스타 부부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는 리얼 예능이다.
김승훈 PD는 “‘별거가 별거냐’는 이혼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라면서 “스타 부부들에게 각자의 방학을 줌으로써 결혼 생활에 활력을 되찾고, 서로의 소중함도 깨우쳐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졸혼 예능 바람…달라진 가족형태 반영
이처럼 ‘졸혼 예능’ 열풍이 부는 이유는 방송사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족상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인 가구, 돌싱족과 같은 새로운 가족 형태가 늘고 있는 것은 물론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는 것.
김소영 PD는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1인 가구, 졸혼 부부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TV프로그램들이 이같은 현상을 관찰 예능으로 담고 있다”면서 “달라진 풍속도에 대한 개념은 물론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는 프로그램이 당분간 다양하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뉴스핌 Newspim] 박지원 기자 (pjw@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