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일각, 소통 환영하나 압박 자리 되지 않을까 '불편한 속내'
4대 그룹 내부에선 "합리적 방안 마련에 대화 가능할 것" 기대도
[뉴스핌=이강혁 황세준 기자] "글쎄요. 조사는 이미 시작된 것이고, 문제가 있으면 엄격하게 법 집행도 하겠다는 것이고. 뭐 원하는데로 한다는 건데. 그럼 만나서 무엇을 이야기하자는 거죠."
한 재계 관계자는 19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이번 주 안으로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과 정식 미팅을 갖는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이런 상황을) 뭐라 해야될지 잘 모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재계 입장에서 김 위원장의 만남 제안은 소통 차원에서 환영할 일이나, 이 자리 역시 대화라기 보다는 통보와 압박의 자리가 되지 않겠냐는 불편한 속내가 드러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 |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의 입장을 듣겠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광범위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전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들은 지금까지 법 테두리 안에서 활동했는데 무엇을 더 자발적으로 해서 모범사례를 만들라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일관된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정부의 몫인데, 그렇지 못한 탓을 기업에게 하는 것처럼 보여 씁쓸하다"고 했다.
이어 "4대 그룹을 만나는 것 자체가 정부의 개혁의지를 보여주는 효과가 클 수 있겠지만, 건설적인 소통과 합리적인 개혁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업의 이해관계자들과 광범위한 소통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과의 만남 당사자인 4대 그룹은 입장 표명을 자제했다.
다만, A그룹의 한 관계자는 "기업을 재벌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기업관이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라면서 "(김 위원장이) 오랜기간 기업을 연구하신 분이라 합리적인 방안에서 대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B그룹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김 위원장이) 급하게 몰아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일감몰아주기 등) 문제로 지적된 부분을 단번에 해소하는 게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 아니겠냐"면서 "제재 만큼 중요한 것이 기업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고 결국 이것이 경제도 살리고 일자리도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고갔으면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4대 그룹을 만나겠다고 한 것을 두고, 지난 2012년 1월 당시 김동수 공정위원장과 4대 그룹 부회장급 대표자와의 만남이 떠오른다는 이야기도 한다.
당시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은 30분 가량 공정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간담회 이후 '중소기업의 사업영역 확대 보장'을 골자로 공생발전 방안을 일제히 발표한 바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4대 그룹 계열사 상당수가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조사 선상에 올라 있는 것 아니냐"면서 "표현은 다르지만 공정위가 고유 권한인 조사를 통해 기업들을 압박하면서 주요 그룹의 대표자들을 불러모으는 모양새 자체는 유사하다"고 했다.
또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공정위가 법 테두리 안에서 기업의 불공정한 행위를 못하도록 하면 간단한 것을 굳이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기업에게는 압박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대한상공회의소는 김 위원장과 4대 그룹 간담회와 관련, 오는 22일 혹은 23일에 개최될 예정으로 각 그룹사 전문경영인 최고위층이 참석자라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 재계팀장 (ikh@newspim.com) 황세준 기자 (hsj@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