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나름대로 애국심도 있고, 제 일에 어느 정도 자부심도 있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자신의 출세나 입신양명을 바란 적은 없다. 그저 꿈이 있다면 다리 아픈 아들과 말 못하는 아내와 함께 2층 양옥집에서 번듯하게 살아보는 것. 내 가족이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사람. 그는 평범한 아버지였고, 평범한 남편이었다.
배우 손현주(53)가 신작 ‘보통사람’을 들고 극장가를 찾았다. ‘보통사람’은 보통 삶을 살아가던 강력계 형사 강성진(손현주)가 나라가 주목하는 연쇄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1987년 전두환 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삼았다.
“아시다시피 원래는 1970년대 이야기였어요. 그러다 회의 끝에 1980년대로 왔죠. 저한테 온 초고는 ‘공작’이었는데 조작, 위작, 공조 비슷하게 많아서(웃음) ‘보통사람’으로 바뀌었어요. 또 원래 감독은 김대두 연쇄 살인마를 모티브로 해서 절대 권력과 싸우자는 게 시작이었어요. 그러다 여기까지 오게 됐죠.”
그렇게 이 영화를 개봉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2년. 소재가 소재인 만큼 (지금이야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시작부터 위험했다. 투자에 제동이 걸리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손현주는 팀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함께 기다렸다. 그는 그간의 과정과 이유, 그 모든 것을 “김봉한 감독과의 약속”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처음 그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어요. 이게 영화로 완성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본인에게 던졌을 겁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다른 걸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죠. 하지만 약속이었잖아요. 김봉한 감독과의 약속. 오직 그것뿐이었어요. 약속은 지켜야 하고 지키라고 있는 거니까요. 중간중간 ‘시그널’도 좀 갔다가 ‘사냥’도 좀 가면서(웃음) 기다렸죠.”
앞서 살짝 언급했듯 ‘보통사람’의 영화적 배경은 1987년 봄이다. 직선제 거부, 4.13 호헌조치 등 군사독재가 절정을 달리던 때이자 민주화 운동이 거세던 시절. 대학생으로 1980년 중후반을 보낸 그에게 당시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했다.
“저는 당시 신분이 학생이었죠. 솔담배가 비싸서 한산도나 은하수를 피웠고 바나나가 귀했고 디스코장을 갔던 그런 기억들이 남아 있어요. 물론 대학생들의 화두는 등록금이었죠. 시위가 많이 있었지만, 전 중심에 서진 않았어요. 그렇다고 애써 외면하지도 않았죠. 그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었죠.”
손현주는 1987년도 정치와 사회, 그리고 묘하게 맞물리는 현 시국에 대해서는 되도록 말을 아꼈다. “여기에 대해서는 김봉한 감독이 설명하는 것이 맞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면 영화의 또 다른 줄기인 부성애 코드에 관해서는 조금 더 솔직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족,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이런 건 똑같죠.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건 없어요. 전에도 말했다시피 만약 지금 손현주한테 그런 제안을 한다면 굉장히 혼란스러울 거예요. 내 아내와 내 아이가 달렸다면, 고민이 많이 되겠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어내야죠.”
강성진만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그 역시 흔들린 적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답이었다. 1996년 드라마 ‘첫사랑’이 방영되던 때, 그에게 달콤한 유혹이 찾아왔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란 노래를 드라마에서 끝도 없이 불렀어요. 그러고 나니 업소에서 제안이 계속 왔죠. 상상할 수 없는 돈을 현찰로 준다니까 흔들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 일이 나쁜 건 아니지만, 두려웠고 연기에 대한 어떤 심지도 있었죠. 2년 정도 지나서 두어 번은 내려갔지만(웃음), 당시에는 뿌리치느라 힘들었어요.”
현재 ‘보통사람’ 프로모션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영화 홍보가 끝나면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스크린에서만큼이나 다양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그는 차기작으로 한 편의 드라마 출연을 확정했다.
“드라마도 잘 보면 순서가 있어요. 처가살이 2년, 장모한테 혼나는 거 2년, 바람피우는 거 2년. 주기가 있었죠(웃음). 아무쪼록 걸어오다 보니 3년 정도 영화를 하게 된 듯해요. ‘쓰리데이즈’(2014)가 마지막이었으니까요. 아직 오픈이 안 돼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다음에는 드라마로 찾아뵙겠습니다(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