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 프레임 부각
포퓰리즘 규제법안 국회 처리 우려
[뉴스핌=황세준 기자]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만장일치로 인용하자 재계는 반기업 정서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10일 삼성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은 공식 입장을 자제하며 바짝 몸을 사린 모습이다. 한 홍보임원은 "탄핵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도 말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기업들이 이렇듯 몸을 사리는 속내에는 탄핵 인용으로 반기업 정서가 확산될 것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탄핵 인용의 결정적 원인이 최순실 국정농단인 만큼 기업들이 그동안 노력해온 사회공헌 등은 잊혀지고 정경유착 프레임만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주축인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오늘 저녁 7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박근혜 구속과 황교안 퇴진, 재벌총수 구속 및 적폐청산 등을 요구한다.
재계는 또 헌재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설립을 최서원(최순실) 사익을 위한 행위로 규정함에 따라 특검에서 조사를 받지 않은 출연 기업들에 대한 전방위 검찰 수사에도 주목하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은 총 53곳, 출연금 규모는 774억원이다. 기업별로는 삼성 204억원, 현대차 128억원, SK 111억원, LG 78억원, 포스코 49억원, 롯데 45억원, GS 42억원, 한화 25억원, KT 18억원 등이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예정되어 있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탄핵 인용을 외치고 있다. / 이형석 기자 leehs@ |
이중에서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2015년 8월 사면 받은 게 대가성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면받을 당시 미르·K스포츠 재단은 설립되지도 않았고 최 회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직접 "최순실 측의 지원요구를 거절했다"고 밝혔음에도 최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조자 풀리지 않은 상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각 기업 당 3~4명씩의 검사를 배치해 특검으로부터 넘겨받은 수사기록을 검토 중이며 다음주부터 본격 수사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는 기업활동을 옥죄는 법안들도 줄줄이 계류 중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우리사주조합의 사외이사 후보추천권 부여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시뮬레이션 결과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이사회에 외국계 투자기관이 선호하는 이사 한 명이 무조건 포진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헤지펀드 등 외국계 투자기관들이 감사위원을 싹쓸이할 수 있다.
경제단체협의회는 상법 개정안이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일률적이고 강제적으로 기업의 자율성을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모험투자와 혁신 등 기업가정신 발휘가 어려워지고 장기적인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대규모 설비투자는 물론 기술·인력개발 투자나 고용 창출 및 유지도 어렵다고 우려했다.
국회에는 대기업 계열사 분할 또는 분할합병 시 배정받은 신주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있다. 현행법상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인적분할시자사주에 배정된 신주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에 걸림돌이다.
재계는 정치권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기업들에 떠넘겨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재계 일각에서는 당분간 정치권이 대선에 집중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중국의 사드 보복 등 경제 현안들이 당분간 뒷전으로 밀릴 우려도 제기한다.
지난해 12월 국회의 탄핵 표결 이후 재계는 경영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이 걷힐 것으로 기대했으나 삼성 특검과 이재용 부회장 구속, 대선 후보들의 잇따른 반기업 공약 경쟁 등 상황은 정 반대로 흘렀다.
박병원 경총 회장은 최근 정기총회에서 "탄핵, 대선 등 복잡한 정치일정 때문에 당분간 경제에 도움이 되는 정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안타깝게도 기업의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여러 법안들이 국회에서 수년째 공전만 거듭하고 있고 어느 분야에 새로운 투자를 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질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드 보복 영향은 관광, 유통을 넘어 스마트폰, 가전 등 제조사에까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이들 업종에 대한 구체적인 보복 움직임은 아직 없지만 삼성, LG 등은 자칫 반한 감정이 불매운동 등으로 번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신제품 'G6'의 중국 출시를 결정하지 않았다.
재계는 정부가 보호무역주의, 자국이기주의 등 글로벌 신경제질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기업 경쟁력 악화는 물론 2류, 3류 국가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심순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트럼프노믹스로 촉발된 보호무역주의는 전통적인 경제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국제무역 질서는 다자협상 시대에서 양자협상 시대로 회귀할 전망이고 이는 글로벌 교역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역협회는 논평을 통해 "국가적으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중한 시기"라며 "앞으로 전개될 대선정국에서는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 성숙한 시장경제를 창달하는 리더십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황세준 기자 (hsj@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