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셰일업계 통제 없이는 공급 과잉 탈피 어려워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미국 원유 재고 급증에 폭락한 국제 유가가 9일(현지시각) 추가 하락하며 장중 배럴당 50달러를 뚫고 내려갔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배럴당 50달러가 바닥이 아닌 천정이라는 의견이 나왔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에 기대 유가 상승 베팅에 나섰던 트레이더들은 백기를 드는 모습이다.
원유 <출처=블룸버그> |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장중 WTI 4월 인도분은 장중 2.8% 급락하며 배럴당 48.88달러까지 밀린 뒤 낙폭을 1% 선으로 축소했다.
종가는 배럴당 49.28달러로 지난해 11월 이후 최저치.
WTI가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처음이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역시 2.7% 내리며 배럴당 51.69달러를 기록한 뒤 낙폭을 1% 내외로 줄였다.
유가 급락의 도화선은 미국 원유 재고 증가다. OPEC과 비회원 산유국의 감산에도 미국 원유 재고량이 지난주 820만배럴 증가, 사상 최고치인 5억2840만배럴을 기록하면서 유가 급락을 촉발시켰다.
코메르츠방크의 유진 와인버그 상품 리서치 헤드는 CNBC와 인터뷰에서 “WTI 가격 배럴당 50달러는 바닥이라기보다 천정으로 보인다”며 “연중 유가가 배럴당 40달러까지 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브룩스 맥도날드 애셋 매니지먼트의 케빈 부처 최고투자책임자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미국의 에너지 자급력을 높일 것”이라며 “올들어 유가 등락폭인 배럴당 50~55달러는 천정”이라고 판단했다.
아랍 에미리트 연합의 수하일 빈 모하메드 알-마즈루에이 에너지 장관 역시 지난 8일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원유 재고 증가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앞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칼리드 알 팔리 석유장관 역시 전세계 원유 재고가 예상했던 속도로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미국 원유 재고 물량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미국이 원유 시장의 수급 균형을 깨뜨릴 것이라는 경고가 번지고 있다. 셰일 업체들이 생산을 늘리며 OPEC의 감산에 따른 효과를 좌절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 최대 셰일 업체 가운데 하나인 콘티넨탈 리소시스의 해롤드 햄 대표는 IHS마킷이 휴스톤에서 주최한 CERA위크 컨퍼런스에서 “미국 원유 생산이 큰 폭으로 증가할 수 있다”며 “미국 업체들이 본격적인 프로젝트 확대에 나설 경우 글로벌 원유 시장을 파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리 칠링구리안 BNP 파리바 상품 전략 헤드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미국 주간 원유 재고 지표를 포함해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이터를 지켜본 투자자들이라면 원유 시장의 수급 균형 회복에 대한 기대가 꺾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한편 파생상품 시장에서 투기거래자들의 WTI 상승 포지션은 50만건을 훌쩍 웃돌며 1980년대 이후 최고치에 이른 상황이다.
투자 심리가 꺾이면서 매물이 쏟아질 경우 유가가 거세게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