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 후 몸 낮췄으나 최근 180도 변화
태극기 프레임으로 집토끼 잡고, 권토중래 모색
[뉴스핌=이승제 정경부장] 어려울 때는 역시 믿음직한 장수뿐이다. 검사 출신으로서는 의외다 싶을 정도로 단어에 새로운 결을 불어넣는 재주를 지닌 맹장이 있으니, 바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태극기 바람에 촛불은 꺼졌다"는 말은 상징과 욕망을 절묘하게 연결한 구호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보수 세력, 아니 정확히는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옛 보수세력은 태극기를 높이 들고 나섰다. "촛불 민심이 종북 좌파 세력에 휘둘리고 있다"는 주장에 이어 태극기와 촛불을 대립시킨다. 한때 정치낭인의 신세로 몰렸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탄핵반대 태극기 집회에서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면 혁명해야 한다는 문재인을 바로 탄핵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새누리당, 아니 자유한국당의 극과 극을 오가는 변신에 관심이 쏠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후 고개 숙여 사죄하며 자숙하던 모습에서 180도 달라졌다. 바른정당이 짐 싸고 나간 뒤에도 신중한 목소리로 연일 개혁을 외치다 최근 갑자기 당당해졌다. 어찌보면 으스대는 모습까지 엿보인다.
그 사이,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은 급격히 잦아들었다. 취임 이후 연일 뼈를 깎는 반성과 혁신이 필요하다며 당장이라도 친박(친박근혜) 핵심 의원들을 죄다 내몰 것처럼 기세등등했던 그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주목할 점은, 바른정당의 낮은 지지율이다. 한때 10%까지 올랐지만 최근 5%대로 원내 비교섭단체인 정의당 밑으로 떨어졌다. 이에 비해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 분당, 당내 개혁을 둘러싼 격돌 속에서도 15% 안팎의 지지율로 더불어민주당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최대주주(박근혜 대통령)가 탄핵안 가결, 뇌물죄 수수 의혹 등으로 사실상 정치적 사망에 이르렀지만 충성고객(집토끼)이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정치권에선 자유한국당의 회귀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탄핵안 가결 후 움츠렸지만 결국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반면 "매우 현실적이고 냉철한 전략에 따라 이뤄지는, 고도의 정치공학"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의 한 재선의원은 이에 대해 "바른정당 분당도 있었고, 어차피 탄핵 정국 이후 당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확실한 기반을 바탕으로 권토중래할 때라는 공감대가 있다"고 귀띔했다. '개혁보수'의 깃발을 든 바른정당의 낮은 지지율이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생존 위기에 몰린 정당이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 활로를 여는 것은 당연하다. 최악의 시련 속에서도 애정을 거두지 않는 15%의 지지층에 '올인'해야 할 것이다. 바깥에서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고 비아냥거린들 눈썹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을 터. 1등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내려앉은 마당에 탄핵 정국 직후의 성가신 겉치레를 벗어던질 때다.
인명진 위원장은 14일 "당명을 바꿔 국민에게 눈속임을 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당명 변경으로) 당이 과거의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진태 의원, 김문수 전 지사 등 자유한국당의 장수들은 또다시 태극기를 높이 들 것이고 인 위원장은 '얼굴마담'과 '개혁 전도사'의 갈림길에서 서성거릴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눈 가림막을 한 경주마가 되어 자신이 설정한 목표지점만을 향하려 한다. 1500만 촛불민심을 '태극기 프레임'에 가두려 한다. 그들이 기대는 언덕은 15% 지지율이다. 하지만 그 15%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오를 수도 있지만, 푹 꺼져 바른정당 밑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 30%'가 한순간 무너진 것처럼 말이다. 자유한국당이 내상 회복을 위해 찾아든 '둥지'는 그리 튼튼하지 않을 수도 있다.
[뉴스핌 Newspim] 이승제 정경부장(openeye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