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상중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형석 기자 leehs@ |
[뉴스핌=양진영 기자]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이 김상중의 열연 덕에 본격 흥행 궤도에 올랐다. 김상중은 윤균상, 채수빈, 이하늬, 김지석 등 주요 출연자들이 등판하기 전, 묵직하고 강렬한 연기로 초반 흥행세를 '하드캐리'하는 데 성공했다.
김상중은 MBC 월화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소설 속 홍길동이 아닌 역사 속 홍길동(윤균상)의 아버지 아모개 역으로 출연 중이다. 아모개는 조참판(손종학)의 씨종으로 아내 금옥(신은정)과 길동 남매를 거느린 가장으로 첫 등장했다. '역적'은 방송 4회만에 12.5%(TNMS 수도권 기준)의 시청률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아모개는 노비로서는 아까운 능력들을 타고 났다. 어릴 적 소년 장수로 불릴 만큼 힘도 세고, 장사 수완도 뛰어났으며, 의리와 배포도 뛰어난 이였지만 천민이라는 출신에 가로막혔다. 모든 것을 숨기고 세상에 순응하며 살았지만 자신을 빼닮아 힘이 장사인 길동이 목숨을 잃을까 면천을 마음먹고, 묵혀둔 재능들을 꺼내 쓰기 시작했다. 한없이 순박해보였던 아모개의 눈빛은 그때부터 빛났다.
하지만 조참봉의 방해와 그를 약탈하려는 악독한 음모 속에 아모개는 결국 아내를 잃었고 모아둔 재산을 빼앗겼다. 노비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주인들 앞에서 그는 정의감에 불타는 영웅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한 사람으로 분노했다. 직접 조참봉의 목숨을 거두며 당시로선 용납될 수 없는 강상죄를 저질렀지만, 주인댁을 뛰어넘는 지략과 배포로 자신을 해코지하려는 참봉부인(서이숙)에게 똑같은 강상죄를 뒤집어 씌웠다.
<사진=MBC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 |
면천에 성공한 아모개는 자신을 면천시켜준 엄자치(김병옥)를 고을의 사또 자리에까지 올리는 데도 성공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김상중의 깊고 짙은 연기력이 빛을 발했다. 어눌한 사투리에 순진하기만 하던 노비의 눈빛과 가족들을 향해 한없이 자애로운 아비를 거쳐 분노에 이글거리는 가장으로 아모개의 감정은 폭발했다. 부조리한 세상을 헤쳐가는 아모개를 보며 시청자들은 울고 웃었고, 자연스레 김상중의 내공에 빠져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2030 세대들이 기억하는 김상중의 최근 인상깊은 연기는 단연 '내 남자의 여자'와 '추적자 THE CHASER'다. 헌신적인 아내를 두고 불륜에 빠져 허우적대는 대학 교수 홍준표부터 '당선되면 절대 안되는' 유력 대선 주자 강동윤까지. 그는 드라마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이나 썩은 기득권을 대변하는 캐릭터를 실감나게 그려왔다.
그런 김상중이 가장 낮은 곳,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보여주는 아모개의 사연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아모개는 아까운 노비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가장이었다. 주인에게 거짓을 고하고, 몰래 재산을 축적하려 위험을 무릅쓰고 장사에 뛰어들고 면천의 꿈을 꾸게 된 것도 다 길동과 가족들 때문이었다.
<사진=MBC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 |
'역적'의 연출을 맡은 김진만PD는 "이 드라마의 시작은 아모개다. 역적이란 발칙한 제목을 갖고 드라마를 할 때 시초이자 주제는 아모개에게 있다. 극중 홍길동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전생일 수도 있다. 아모개의 내세의 인물이 김상중 씨일 수도 있다"면서 김상중의 믿음직한 연기를 예감했음을 밝혔다. 그의 뜻이 통한 듯 김상중은 아모개의 얘기를 듣고 바로 출연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중은 '역적'에 출연을 결정하며 "이 겨울에 왕도 아닌 영의정도 아닌 최하층 천민 역을 하게 됐다. 노비 역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흰 옷을 입은 노비의 모습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지만, 김상중의 출연에 '역적'을 선택한 이들이 대다수다. 김상중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용포가 없어도 소박한 가운데 빛난 건 누구보다 아모개에게 몰입해 아파했던 진심이었다.
김상중은 드라마 방송에 앞서서도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 서막'에 강사 설민석과 등장해 시청자들의 역사적 배경 이해를 도왔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며 쌓은 신뢰의 이미지로 한번 더 아모개 정신을 묵직하게 전달한 셈이다. '역적'의 흥행, 드라마의 시작과 끝에 김상중이 있다는 것을 누구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