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그는 아픔이라 했다. 영화도 현 시국도 국민 모두에게 크나큰 진통이고 아픔이라고. 하지만 아프다고 외면하고, 아프다고 마음을 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아픔을 감내하고 직시하자고, 그래야 우리 사회 구조의 부조리와 부도덕함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그가, 그리고 그의 신작이 그렇게 말했다.
배우 정우성(44)이 지난 18일 ‘더 킹’을 들고 극장가를 찾았다. ‘관상’(2013) 한재림 감독이 직접 쓰고 만든 이 영화는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나게 살고 싶었던 박태수가 대한민국을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을 만나 세상의 왕으로 올라서기 위해 펼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극중 정우성은 한강식을 열연, 박태수 역의 조인성을 권력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의아함은 있었겠죠. 왜 주인공이 아닌 서브를 하지라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이다, 아니다는 크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내가 어떤 롤을 했을 때 얼마만큼 파급력 있게 하느냐, 잘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그리고 그게 결국에는 전체가 되는 거니까. 이건 같이 참여하고 만든 ‘우리’ 영화잖아요. 어떻게 보면 오히려 스스로에게 활동의 폭을 넓혀주는 선택이었죠. 재밌게 봤고 기분 좋아요. 더욱이 어쨌든 이 영화의 궁극적 목적은 관객과의 소통인데 많이 봐주셔서 감사하죠.”
극중 정우성이 연기한 한강식은 자신이 설계한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철함의 소유자다. 20대 초반에 사시에 합격, 노태우 정권 시절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목포를 평정했다. 이후 그는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실제 중의 실세로 떠올랐다.
“품위 있고 우아한 한강식의 외피를 위해서 나의 몸을 빌려준 거뿐이죠. 사심과 사리사욕으로 가득 찬 추악하고 추잡한 한강식를 망가뜨리기 위해서 가볍게 표현하고 우습게 그리고자 했어요. 한강식을 만드는 데 있어 배우 정우성의 접근법은 캐릭터에 대한 애정보다는 사회에 대한 분노였죠. 사람들이 날 비웃었으면 좋겠고, 마지막 장면에서 짜릿한 통쾌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중요한 공공기관, 국민을 위한 기관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우스워 보일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둔 거죠.”
사실 영화 속 한강식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실제 일각에서는 “‘더 킹’이 김기춘·우병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시국 때문에 김기춘 비서실장의 공작 정치, 정치 액션으로 보는 거예요. 우병우 민정수석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알다시피 시나리오를 받고 촬영할 땐 전혀 생각할 수 없었죠. 오히려 진경준 전 검사장의 스캔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커피를 마셨던 홍만표 변호사 등을 빗 된 표현이 있었어요. 하지만 사실 한강식은 누구나 될 수 있는 표상이죠. 다만 앞서 말했듯 현 시국이 이러니까 요즘 인물과 결부되는 건데 그걸 놓고 한강식이 누구를 표현한 거다, 기다 혹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죠.”
여타 배우들과 달리 실명(?)까지 거론하며 시원하게 답하는 모습에 이야기는 자연스레 정치로 넘어갔다. 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까지 이름을 올린 정우성은 그간 공식, 비공식 자리에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시원하게 밝혔다. 지난해 ‘아수라’ 관객과의 만남 자리에서는 극중 대사를 인용, “박근혜 앞으로 나와”라고 외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가 하는 말들이 정치적 소신 발언은 아니죠. 지금 집권당이 하는 정치를 바라지 않거나 혹은 진보로 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니까요. 그저 상식선에서 국민이 느끼는 불합리함, 잘못된 권력의 휘둘림에 대한 생각이었죠. 그걸 정치적 소신 발언이라고 평가하는 세상이 잘못된 거예요. 배우니까 파급력은 더 크겠죠. 하지만 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한 거뿐이에요. 그런 발언에 정치색을 씌워서 평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제가 하는 모든 말은 어디까지나 상식선의 요구죠.”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정우성이 즐겨 하는 소신(?) 발언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얼굴 자부심. 자타공인 최고의 미남 배우인 그는 언제나 거리낌 없이 자신의 외모를 호평한다. “잘생겼다”는 인사에 “알고 있다”는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배우이기도 하다.
“근데 사실 잘생긴 건 잠깐이에요. 즐기는 거죠. 사실 진짜 아름답게 가꿔야 하는 건 내면이죠. 가치관 확립이 중요해요. 향기는 얼굴이 아닌 내면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주어진 얼굴에 감사할 수 있죠. 하지만 그거 하나로는 살 수 없어요. 나란 사람에 대한 질문, 내 생각과 감정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통해 자기를 발견해나가야죠. 그렇게 자신을 발견했을 때 적립된 생각을 잘 표현해야 온전한 아름다움이 나오는 거죠. 사실 저는 아직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 나를 아는데 걸리는 시간은 상당해요(웃음).”
이번 설 연휴도 영화 홍보로 보낼 정우성은 곧 또 다른 작품 ‘강철비’ 촬영에 들어간다. ‘강철비’는 ‘변호인’ 제작진이 다시 뭉치는 프로젝트로 지난 2011년 5월부터 12월까지 연재된 웹툰 ‘스틸레인’을 영화화한 작품. 김정일 사후 북한 및 한국의 상황을 재구성, 북한 전직 정찰총국 요원 엄철우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대행 곽철우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 연기를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즐겨요. 그렇다고 가볍게 여긴다는 건 아니죠. 배우는 재밌는 고민을 하는 직업이잖아요. 삶의 아름다움에 관해 자꾸 고민하니까 스트레스도 덜하죠. 그래서 계속 일할 수 있는 거고요. 물론 일상에서 배우라는 직업이 가진 장점은 하나도 없어요(웃음). 부당한 직업이죠. 사실 젊었을 때는 다시 태어나서 배우 할 거냐고 물으면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안 할까 싶어요. 일상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생활 패턴을 가지니까. 아마 그래서 더 자꾸 카메라 안으로 들어가려나 봐요(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