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무역? 아니고, 우리는 공정·균형 원해"
[뉴스핌=김사헌 기자] 미국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다. 올해 세계 경제의 최대 위험요인은 여러가지로 제시되었지만, 그 핵심고리는 바로 트럼프다. 그 중에서도 달러화와 무역 정책이 중심에 있다. 월가는 기대반 우려반으로 트럼프를 해석해왔지만, 대부분 '기대'에 근거한 것이었을 뿐이다.
이제 실체와 마주한다. 그 동안은 집단지성이라기 보단 시장의 '야성적 충동'으로 읽다보니 오해가 많은 대목이다.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은 늘 자신의 입장을 지나칠 정도로 뚜렷하게 제시해왔지만, 경제전문가나 시장의 해석은 복잡했다. 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적인 모순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었다.
대체 트럼프가 원하는 달러화와 무역정책의 기본적인 밑그림은 무엇일까.
◆ 수퍼 달러? 노(No) '약한 듯 강한'(!) 달러
달러화 <사진=블룸버그> |
달러화에 대해서도 그랬다. 월가는 트럼프의 정책이 경제 활성화를 수반하는 리플레이션이라고 보고, 이에 따른 실질금리의 상승이 금리 격차에 기반한 달러의 추가 강세를 유발하는 '강 달러' 시대를 예상했다.
하지만 지난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당선인이 기자회견에서 "달러화가 너무 강하다"고 불만을 표출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미국 기업은 달러가 너무 강해서 중국 기업과 경쟁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부연설명했다.
뉴욕 외환시장은 곧바로 동요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까 말까 고민했다. 사실 트럼프의 환율 수준에 대한 발언은 주요 20개국(G20)이 합의한 '경쟁적 평가절하 회피'를 위반하는 구두개입이었다.
그러자 곧이어 등장한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지명자가 이런 동요를 잠재웠다. 옐런 의장은 경제 성장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3%의 중립 금리 수준을 제시하며 점진적인 금리인상에 나설 것임을 재확인했다. 이는 달러화의 기본적인 지지요인이다.
또 므누신 지명자는 의회 청문회에서 "달러화는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통화로 거래되어 왔고, 이런 면에서 장기적인 달러화는 강한 통화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므누신은 "트럼프의 발언은 단기적인 달러화의 움직임에 대해 얘기한 것"이라고 해석해 급격한 환율 변동과 투기적인 변화에 대응하는 경게 발언이었다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단기적으로 달러가 강하다고 보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그는 "재무장관 지명자인 제가 환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즉답을 피했다.
실제로 미국 달러화지수는 금융 위기 이후 70.698까지 밀리면서 약세기를 지속해왔으나, 미국 금리정상화가 거론되는 2014년 바닥에서 약 25%나 급등해 다시 강세기로 접어드는 이른바 '수퍼 달러' 기간이 도래했다는 기대감을 한 몸에 받는 중이었다.
미국 달러화 지수 1973~2016 <자료=매크로트렌드> |
부연하자면, 미국 달러화를 6대 주요 통화 바스켓에 대해 연동시킨 달러화지수(US Dollar Index)는 1973년부터 100기준으로 집계되기 시작한다.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정지 선언 이후 1973년 브레튼우즈 체체의 최종적인 붕괴 시점이다. 금 태환이 되지 않는 지폐통화이다보니 불안정성이 심했다.
1970년대 후반까지 불황기에 약세를 면치 못했던 달러하는 하지만 이후부터는 불황기 때마다 강세 통화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1980년 초반 불황기를 거쳐 이른바 '수퍼달러' 기간이 전개되자 라틴아메리카 부채 위기가 발생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에 이은 1987년 루브르협정, 이른바 역플라자합의를 통해 안정을 찾은 달러화는 또다시 강세로 전환하자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기 발생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장기 약세기를 거친 달러화는 2013년 이후 미국 금리 정상화 논의를 계기로 바닥을 치면서 다시 강세 통화로 전환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장기적인 틀에서 보면 현재 달러화는 적정한 수준을 되찾은 상태로, 외부 위기나 추가적인 불황이 전개되지 않는 이상 안정국면을 이어갈 공산이 커 보인다.
트럼프는 외환전문가는 아니지만 달러화 강세가 미국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것 정도는 야성적인 충동을 통해 느끼고 있는 셈이다. 미국 제조업 부활 공약을 내건 트럼프 정부로서는 수출에 걸림돌이 되는 달러화 강세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소비 중심이고 가계 금융자산 중 주식이 46%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달러화의 기본 가치가 유지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달러가 강한 통화일 때만 전 세계 투자자금이 미국 자산시장으로 유입된다. 강한 달러화가 미국 자산가치를 부양하고 이는 가계의 부의 효과를 창출해 소비를 진작시키고 나아가 경기 호황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경제 정책. 즉 장기 전략 면에서 언급되는 강한 달러화와 전술적인 달러 약세 추구는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는 "약한 듯한 강세 통화"가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기조적으로 관철된다고 볼 수 있다.
◆ 무역 전쟁? 노.. 재균형 원해 "수출 늘리고 수입 부담 줄일 것"
트럼프의 정책 전망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또다른 이슈는 바로 보호무역 정책과 세계화 질서를 이끈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 수출국에 큰 이슈다.
트럼프 정부가 아시아 수출국 어느 한 곳만이라도 무역 장벽을 높게 올린다면 이는 곧바로 주변국들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특히 아시아 수출국들이 서로 다른 제조단계의 중간재를 연결하는 식으로 상호 밀접하게 연계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현재 대미 무역 흑자가 큰 나라는 중국(350억달러 내외)으로, 일본, 독일, 멕시코 그리고 아일랜드가 그 뒤를 잇지만 각각 70~80억달러 수준에 그친다. 우리나라는 50억달러 미만의 흑자 규모로 6위에 올라있다. 미국이 심각하게 보는 적자품목 1위는 자동차, 그 다음이 원유 그리고 통신장비다. 이어 컴퓨터와 자동화기기, 의약품 그리고 의류 순이다.
모간스탠리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 이런 면에서 가장 큰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역시 통신장비와 컴퓨터 및 부품, 자동차, 스포츠 용품, 의류가 제일 영향이 큰 분야"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가운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인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경제적 세계화"를 추구한다고 밝혀 트럼프 정부의 무역전쟁에 대해 견제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인사는 무역 전쟁에 대한 우려는 과도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차기 정부의 백악관 자문역을 맡게 된 헤지펀드 투자자 앤서니 스카라무치는 19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교역을 제한해서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미국의 수출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기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보스포럼에 당선인의 사절로 참석했다.
스카라무치는 "트럼프 정부는 세계 교역을 억제하거나 줄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교역 상대국이 미국 제품을 좀더 사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새 행정부에서 만든 교역위원회는 자유무역을 하되 공정한 무역을 하자는 입장"이라며 세간에 알려진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든 양자 교역에서 좀더 공정하고 균형있는 방식을 원할 것"이라면서 "트럼프 정부는 세금 감면과 다양한 경제 정책으로 미국 재화와 서비스의 경쟁력을 높이고 또 강한 경제 성장엔진을 장작할 것인데, 이런 미국 경제의 활성화는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카라무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공정한 무역을 원하지만 지금은 불균형 상태라고 본다"면서 "중국이 바보가 아니라면 협상을 하려고 나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카라무치의 발언에 앞서 중국 상무부는 같은 날 성명을 통해 "트럼프 정부와 건전한 무역 관계를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중국 상무부는 중국과 미국이 대화화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30년 이전에 정립된 양국 관계로 상호 교역과 경제 협력은 불가분의 관계로 만들었고 지금도 매일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중국에서 생산된 수입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입장에 대해 공개적인 협상을 하자는 시도로 풀이된다.
한편, 트럼프는 앞서 공화당이 추진하는 국경 조정세(border adjustment tax)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드러내 주목된다. 국경조정세는 미국의 수출품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수입품에만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 제도가 너무 복잡하고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수입업체 의존도가 높은 미국 소매업체들과 정유사들은 국경 조정세가 적용되면 내야 하는 세금이 오르고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며 이 제도에 반대해 왔다. 공화당은 이 제도가 추가 달러화 강세를 유도해 수입품 가격을 낮춰 세금 증가분을 상쇄할 것이라고 설명해왔지만, 이 과세 방식을 바꾸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