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전지현 기자] “5만원이요? 한우 명절선물 세트상품을 5만원에 맞추려면 양지, 사태, 국거리 등 상품성이 떨어지는 제품으로 구성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한우 농가 관계자의 말이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으로 한우 선물세트 상품 구성이 바뀌며 고급스러웠던 K-푸드의 질이 낮아지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실제로 한우 선물세트를 파는 유통업체들은 김영란법 시행 후 처음으로 맞는 설 명절에 5만원 이하 선물세트를 늘리면서 한우 농가들에게도 가격에 맞춘 상품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관계자는 "같은 한우라도 등급이나 부위, 육성 방법과 환경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5만원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선물세트의 질적 저하는 한우만이 아니다. 백화점에 명절선물세트로 참기름을 납품하는 한 관계자는 "대량생산 공정방식으로 하면 1kg 참깨로 330㎖ 3병을 만들 수 있지만, 거르는 횟수를 줄이고 산화되지 않도록 온도를 낮추는 전통방식으로는 한 병도 못 만든다"며 "맛의 깊이나 차이가 나서 가격이 높아지는데 가격 제한선 때문에 질이 떨어지는 재료를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전보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제품들이 쏟아지다 보니 구매자 손길이 멀어지고 매출 하락을 반복하는 ‘악순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 암울한 것은 이렇게 고급화된 상품이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판로 자체가 막히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물론, 모든 선물을 김영란법과 연계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청탁문화 근절을 목표로 제정된 법률이 국내 경제의 근간을 이뤘던 1차 산업 생태계를 와해시키는데 한 몫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3월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개최한 ‘제2차 민관합동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소비재 수출활성화 대책’을 통해 K-뷰티, K-푸드 등을 연계한 대규모 한류 박람회 개최 및 소비재 고급화를 위한 연구개발 지원 강화 방안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질이 떨어지는 상품으로 까다로운 외국인들의 선택을 받을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선 한우 농가 관계자는 “상품이 판매되더라도 이미지에 타격을 입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 석달여. 현 시점에서 정부는 명절 대목에도 웃을 수 없는 농·축산업 종사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로 인해 K푸드 고급화를 외치던 정책이 공염불이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올해는 설이 달갑지 않다고 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뉴스핌 Newspim] 전지현 기자 (cjh7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