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해커 공격·양국 관계 악화·민주주의 억압
알레포 휴전 물거품?…러시아, 쿠르드 카드 이용
[뉴스핌=김성수 기자]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 안드레이 카를로스가 지난 19일 수도 앙카라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번 범행은 러시아의 시리아 정부군 지원에 불만을 품은 터키 경찰관의 소행으로 파악됐다. 러시아 외무부가 이번 사건을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면서 향후 터키와 러시아의 외교 관계에 파열음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날 시카고트리뷴은 양국 관계 악화는 물론 러시아의 터키 해킹, 민주주의 억압, 알레포 휴전 물거품, 러시아의 쿠르드 지원 등 이번 러시아 대사 피살 사건으로 우려되는 5가지 시나리오를 정리했다.
터키 앙카라 현대미술관 전시장에서 19일(현지시각) 축사 중이던 안드레이 카를로프 대사를 총으로 쏴 살해한 터키 남성이 바닥에 쓰려진 카를로프 대사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사진=AP/뉴시스> |
◆ 러시아와 터키 관계 악화
이번 저격사건은 시리아 정권이 알레포에서 4년 반 만에 승리를 거두고 수니파 반군 철수가 진행되는 중에 발생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시아파 민병대 등과 함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원, 알레포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반대로 터키는 줄곧 시리아 반군을 지원했다.
터키 내무부에 따르면 러시아 대사를 저격한 범인은 메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라는 이름의 터키 경찰관이다. 그는 범행을 저지르기 전 "알레포를 잊지 말라", "(시리아와 알레포를) 압제한 이들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외쳤다고 목격자들이 증언했다.
러시아 대사가 터키 경찰관의 '보복성' 테러 행위로 사망했다는 결론이 난다면 양국 관계와 시리아 내전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 수사결과에 따라 외교·군사적 후유증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뉴욕타임스(NYT)는 범인이 이슬람 지하드 운동 단체원들이 쓰는 "신은 위대하다"는 구호를 외친 것으로 미루어,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나 이슬람국가(IS)의 동조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민주주의 억압 수단
이번 피살 사건이 터키와 러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앞서 터키 정부는 지난 7월에 3개월 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휴가로 수도 앙카라를 비운 사이 일부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벌인 여파다.
국제앰네스티는 최근 터키의 언론 자유 보고서를 발표하고 쿠데타 시도 후 터키 당국의 비판언론 탄압이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쿠데타 진압 후 최근까지 국가비상사태 조처에 근거해 언론사 140곳이 폐쇄됐고, 언론사·출판사 소속 언론인 등 직원 2500명이 직장을 잃었다고 밝혔다. 또한 터키 정부가 올 한해 구금한 언론인은 81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러시아 역시 이번 사건을 '테러'라고 규정한 만큼 강경한 대응에 나설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성명서를 내고 "이번 공격에 대해 러시아가 대응할 유일한 방식은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가속화하는 것"이라며 "범인은 곧 그것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러시아 해커, 터키 공격할 수도
터키에 대한 러시아 해커들의 공격이 다시 기승할 우려도 있다.
터키 정부는 이전에도 해커들의 공격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위키릭스는 터키 에너지장관 베랏 알바이라크의 이메일 5만7000여 건을 공개한 바 있으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사위 역시 이메일이 해킹당했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가정보국(DNI), 중앙정보국(CIA)은 러시아가 도널드 트럼프를 돕기 위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개입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힐러리 클린턴 선거운동 책임자인 존 포데스타의 이메일도 해킹돼 폭로됐고, 민주당전국위원회(DNC)가 클린턴의 후보 당선을 위해 버니 샌더스를 의도적으로 견제했던 사실도 폭로됐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 피살로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해커들의 보복적 공격이 거세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 알레포 휴전 물거품?
시리아 내전의 핵심 전투지인 알레포에서는 지난 13일 정부군과 반군이 휴전에 합의했다. 이로써 알레포 전투는 4년 반 만에 일단락됐으나, 평화협정이 제대로 체결되지 않아 철군 등을 둘러싸고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이 가운데 러시아 대사 암살로 인해 휴전이 물거품이 되거나, 시리아의 다른 지역에서 다시 전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병력은 시리아 동북 지역에 아직 주둔 중으로, 터키 군대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반군 철수가 진행 중인 알레포 동부에서는 국제 사회가 '인도주의적 재앙'이라고 부를 정도로 막대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현지 의료진은 "피난민은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고, 아이들은 감기에도 걸렸으며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매우 끔찍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 러시아, 쿠르드 카드 이용
러시아가 터키와의 관계에서 '쿠르드'를 지렛대로 이용할 수도 있다.
쿠르드족은 터키-시리아-이라크-이란 국경지대에 살고 있는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으로, 터키 정부를 상대로 30년간 무력으로 독립투쟁을 벌여왔다.
터키는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외에도 자국 동부 지역에 주로 퍼져있는 쿠르드계 인구와 오랜 기간 내전을 벌여왔다. 터키가 IS를 공격하는 척 하면서 쿠르드 노동자당(PKK)을 더 광범위하게 공격하고 있다는 게 쿠르드 측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터키를 압박하기 위해 쿠르드계 이민자들을 지원하고 이들의 테러 공격을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뉴스핌 Newspim] 김성수 기자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