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영화 ‘판도라’가 흥행 궤도를 달리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판도라’는 첫 주말 이틀간 70만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현재까지 누적관객수는145만9276명.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만든 이들은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영화의 흥행이 관객의 울분과 일맥상통하기에. ‘판도라’는 역대 최악의 강진에 원전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초유의 재난 속에서 피해를 막기 위해 나선 평범한 사람들의 사투를 담은 작품. 영화는 실제 경주를 공포를 몰아넣은 지진과 어지러운 현 시국과 제대로 맞물리면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결국 ‘판도라’ 역시 정부로부터 발생한 인재죠. 처리하고 희생하는 건 국민이고요. 그런 면에서 현 상황과 일정 부분 맞닿아 있기 때문에 많은 분이 함께 공분해주시는 듯해요. 저 역시 전체 메시지에 많은 분이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참여하게 됐고요. 한 번도 우리나라에서 다뤄지지 않은 소재에 정치적 폐해를 보여주는 게 매력적이었죠. 물론 가족이라는 코드도 있고요. 사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가족이잖아요. 그런 부분에서도 관객의 공감을 많이 산 듯해요.”
배우 문정희(40)는 이 영화에서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는 재혁(김남길)의 형수 정혜를 열연했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방사선 피폭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어린 아들을 키워온 인물. 물론 발전소 옆에서 자식을 키우는 것이 불안하지만, 시어머니 석여사(김영애) 앞에서는 크게 내색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전사고가 일어나면서 정혜는 어린 아들마저 잃게 될까 두려움에 휩싸이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자신하던 시어머니를 원망한다.
“모성애 연기는 보통 주변을 리서치해요. 또 조카가 있어서 도움을 받죠. 물론 다 이론적인 거라 힘든 부분도 있어요. 만드는 과정도 길 수밖에 없죠. 반면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저도 결혼을 했고, 연기하면서 처음 다뤄본 거라 재밌게 여러 요소를 녹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시어머니와의 관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도 했고요. 다만 대사가 많지 않아서 힘을 얼마나 줘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떻게 보실지 걱정이네요.”
문정희는 자신의 연기를 두고 또 한 번 자세를 낮췄지만, 그의 열연은 분량과 무관하게 가장 돋보인다. 물론 문정희는 언제나처럼 그 공을 함께 피난(?)을 떠났던 배우들에게 돌렸다. 정신없던 현장에서 완벽한 연기를 뽑아낼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배려해서 같이 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감정이 나올 수 있었어요. 사실 김영애 선생님은 우리 엄마, 언니 같은 케미가 깔려있었어요. (김)주현이도 이런 긴 호흡은 처음이었는데 너무 잘해줘서 기특했죠. 물론 선생님이나 주현이 뿐만 아니라 함께 뛰어다닌 보조 출연자들도 너무 잘해주셨고요. 가장 추울 때부터 더울 때까지 단벌로 너무 애 많이 쓰셨죠. 덕분에 현장에서 날 것의 느낌들, 감정들이 잘 드러났고요. 다 같이 울고 웃고 박수도 쳐주고 그렇게 힘을 내서 찍은 듯해요. 서로 우산도 씌워주고 아이스크림도 돌려먹고(웃음) 함께라서 좋았던 기억이 많아요.”
문정희가 빼놓을 일 없는 또 한 명의 고마운 이, 박정우 감독에 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알다시피 두 사람은 앞서 영화 ‘연가시’(2012)에서 함께 호흡한 바 있다. 이제는 더없이 좋은 친구가 돼버린 박정우 감독 이야기에 문정희는 칭찬을 쏟아냈다. 간혹 장난기 가득한 농 사이에도 그를 향한 신뢰와 애정, 그리고 존경심이 묻어났다.
“작품 들어갈 때부터 믿음이 있었어요. 조심스럽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명확했고, 감독님이 해왔던 스타일을 아니까요. 물론 저뿐만 아니라 다들 감독님에게 거는 기대가 있을 거예요. 인간적으로도 너무 좋으신 분이죠. 잔정도 많으시고 배우를 비롯해서 주위에 참 잘하세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영화 보면서 되게 뿌듯하더라고요. 그래서 잘 찍었다고, 고생했다고 진심으로 안아줬어요. 재난 장르에서 확실히 감독님의 스페셜티가 가장 잘 발휘되는 듯해요.”
박정우 감독과 남다른 친분이 있으니 ‘판도라’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타 배우들보다 자세히 알 듯했다. 더욱이 ‘판도라’가 베일을 벗은 후 박정우 감독은 남다른 예지력(?)으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사회적 시스템을 말하고자 했지만, 현 상황을 예상해서 쓴 건 아니죠. 감독님 역시 국민 중 한 명으로 쌓아온 것을 영화에 반영했고 그게 맞아떨어진 게 아닌가 해요. 지진과 원전 사고는 저를 비롯해 모두가 그저 재밌게 찍었죠. 경각심을 주는 드라마틱 극 구조라고 생각했지, 현실이라고 여기진 않았으니까요.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지진은 일본에 일어나는 거로 알았죠. 실제 지진이 났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판도라’가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영화 속 일이 일어나는 거라 공포심이 일었죠.”
그 공포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지 온몸으로 겪었기 때문일까. 문정희는 인터뷰 시작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관객,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원자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길 바랐다. 그리고 아직은 존재하는 희망을 찾길 바랐다. 자신이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것처럼.
“보호 구역이라 접근이 쉽지 않고 기밀인 건 이해가 되죠. 다만 원자력이라는 에너지원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원자력 발전소 밀집도가 높잖아요. 그러니 이걸 숨기는 건 말이 안되죠. 처리 과정, 시간, 비용을 알아야 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정보를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또 저처럼 이번 영화를 계기로 어떤 태양열, 지열 등 환경적인 부분에 눈을 돌리는 계기도 됐으면 하고요. 전 우리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원전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기회로 원자력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같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