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체방크 불안 점화…웰스파고·코메르츠방크 등 문제 산적
[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밤 사이 유럽과 미국의 대형은행 문제들이 연거푸 터지면서 글로벌 금융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미국 법무부로부터 시가총액에 맞먹는 수준의 벌금을 부과 받은 독일 최대은행 도이체방크는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에도 투자자들이 빠르게 등을 돌렸다.
또 다른 독일 대형은행 코메르츠방크도 재정난을 해소하고자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미국에서는 4대은행 중 한 곳인 웰스파고은행의 유령계좌 스캔들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미국 은행권 도덕적 해이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러한 대형 은행들의 건전성 위기가 글로벌 금융권 전반을 뒤흔들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불안이 고개를 들면서 29일(현지시각) 미국과 유럽증시 금융업종은 가파른 내리막을 탔다. 위기 중심에 있는 도이체방크의 경우 유럽에서 장중 10.18유로까지 밀리며 사상 최저치를 새로 썼고 미국증권거래예탁증서(ADR)도 7%에 육박하는 낙폭을 나타냈다.
금융권이 흔들리면서 유럽은행 및 금융서비스 기업 38곳을 추종하는 블룸버그지수는 올 들어 현재까지 24% 급락했고 미국 금융기관 24곳에 대한 KBW은행지수는 4.6%가 미끄러졌고 이 중 웰스파고가 18% 밀리며 약세를 주도했다.
◆ 도이체방크, 어쩌다 이지경?
도이체방크<사진=블룸버그> |
은행권 위기 불안감을 점화한 도이체방크의 건전성 위기는 작년부터 피어 올랐다.
CNBC보도에 따르면 문제가 시작된 것은 작년 6월 도이체방크가 UBS 최고재무책임자(CIO)로 있던 존 크라이언을 공동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면서부터다. 이후 2015년 10월 크라이언은 ‘전략2020’으로 불리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발표하는데 보통주 배당 중단과 일자리 감소 등을 골자로 했다.
하지만 지난 6월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서 도이체방크가 글로벌 은행시스템 리스크의 장본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IMF는 HSBC, 크레딧스위스와 함께 도이체방크를 지목하며 이들에 대한 리스크 관리와 집중적인 감독, 역외 익스포저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이 상당히 중요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한 달 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도 도이체방크 구조조정 전략 이행과 관련한 난관들 때문에 은행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하면서 불안감이 본격 싹트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도이체방크가 유럽에서는 건전성시험(스트레스테스트)을 가까스로 통과했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실시하는 테스트에서 불학격점을 받은 점도 불안을 부채질했다.
재정 문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도이체방크 주가는 급락, 크레딧스위스와 함께 유럽 블루칩 스톡스유럽50지수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지난주에는 미국 법무부로부터 140억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으며 재정 압박을 받게 됐다.
◆ 자구책도 안 먹혀…’팔자’ 행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사진=블룸버그> |
도이체방크의 재정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은 독일정부가 나서는 방법이다. 하지만 은행과 정부 당국 모두 구제금융 가능성을 배제했고 정치적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솔루션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니코자산운용 포트폴리오매니저 홀거 머튼스는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베일아웃(bail-out)과 반대로 은행 채권단과 예금자들이 지분에 대한 손실을 감당하는 베일인(bail-in) 방식이 유럽에서 더 보편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정부 개입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국은행 구제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을 강력히 반대해 왔다는 점도 도이체방크 구제금융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은행 경영진이 사업 분리 등 자구책을 스스로 마련하는 방법이 정부 개입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부에서는 큰 위기가 아니라는 의견들도 있다. 베세머 트러스트 담당이사 레베카 패터슨은 “리먼 사태나 2011년 그리스와 같은 유로존 이슈와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고,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역시도 지금은 도이체방크의 구제금융이 시급히 요구되는 시점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이날 도이체방크가 자회사인 애비생명보험을 피닉스그룹에 12억달러(약 1조3110억원)에 팔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은행에서 발을 빼기 바빴다.
업계에 따르면 도이체방크와 파생상품을 청산하는 10개 헤지펀드가 포지션을 축소한 한편 현금을 일부 회수했고, 도이체방크의 5년물 선순위채 신용부도스왑(CDS) 가격은 228bp로 급등하며 6개월래 최고치로 뛰며 시장 불안을 반영했다. 5년물 후순위채 CDS 역시 459bp로 치솟았다. 주가 하락을 예상한 공매도율 또한 전날 2.4%에서 3.1%로 상승했다.
◆ '은행발 위기' 경고음 고조
도이체방크를 필두로 한 이날 헤드라인들이 시장을 뒤흔든 배경에는 글로벌 금융권 전반으로 순식간에 재정위기가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금융관련 블로그사이트 울프스트리트 편집인 리처는 “유럽의 은행 위기가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대형은행 한 두 곳이 갑자기 무너지면 즉각 신용이 경색되고 금융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켓워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유럽 은행들의 수익성이 악화된 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권 구조조정 노력이 더뎌지고 있는 점, 막대한 부실채권을 안고 유로존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이탈리아 은행권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은행발 위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서도 웰스파고은행 유령계좌 스캔들 이후 당국에서 미국 대형은행권 전반에 대해 도덕적 해이 문제를 두고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할 전망이어서 금융권 전반의 타격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이며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시장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시드니 특파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