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의열단원 김시현은 단장 김원봉으로부터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운반하라는 명을 받는다. 이에 김시현은 안면이 있던 경기 경찰부 황옥 경부를 포섭, 그와 함께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운반한다. 하지만 의열단 내부 밀정으로 인해 두 사람은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황옥은 재판에서 “폭탄 반입을 도운 건 의열단 검거를 위한 비밀작전”이라고 주장한다. 이후 김시현은 징역 10년형에 처하고 황옥은 2년 후 가출옥한다.
황옥 경부 폭탄사건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만든 작품이 오는 7일 극장가를 찾는다. 바로 배우 송강호(49)의 신작 ‘밀정’. 내달 7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숨 막히는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렸다. 극중 송강호가 연기한 인물은 이정출로, 황옥을 빗댄 인물이다.
“밀정이 누구일까를 탐색하는 영화가 아니에요. 암울하고 암담했던, 혼돈과 혼란이 난무했던 시기를 통해 일제강점기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특정 인물이 이렇게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쓴 영화도 아니죠. 개연성을 이야기하시는 분이 많은데(웃음) 우린 작은 개연성보다는 더 큰 부분을 바라봤어요. 물론 이정출 인생이 주요 축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사람의 변화 과정이 아닌 그 시대의 많은 사람이 혼란스럽게 살아왔다는 거니까요. 일부 관객에게는 불친절할 수 있겠으나 그렇기에 더 매력적이고 깊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송강호가 맡은 이정출은 사실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일본 경찰의 비밀 작전을 실행했다는 설과 법정에서 의열단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거짓증언을 했다는 설이 대립하는 것. 물론 김지운 감독이 재탄생시킨 이정출은 후자다.
“이번 연기는 사실 어려웠어요. 제가 이런 모호한 역할은 또 처음 해보지 않습니까. 지금까지는 다 확실한 캐릭터였는데 이정출은 정체성이 없는 느낌이었죠. 물론 그걸 연기하는 맛도 있었지만요. 황옥이라는 분의 역사적 평가도 엇갈리죠. 하지만 오히려 명확했다면 부담스러웠을 듯합니다. 편안하다는 표현보다는 지금도 불분명해서 연기하기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던 거예요. 오히려 더 상상력이 발휘되고 더 창의적으로 인물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죠.”
평가가 어떻든 간에 어찌 됐건 황옥은 가장 치열했던 시기를 산 인물. 송강호는 바로 그 지점이 끌렸지만, 바로 그 지점 때문에 부담됐다고 털어놨다. 실존 인물을 수없이 연기해 온 송강호이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무게감이 달랐다.
“일제시대는 더욱이 아프고 치욕적인 역사이지 않습니까. 특히 독립투사들의 헌신과 고통의 삶을 다룰 때는 경외감이나 숭고함이 저절로 들죠. 사극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실존 인물 연기요? 차기작인 ‘택시운전자’도 실존 인물이긴 한데(웃음) 의도한 건 아니지요. 실존 인물, 사건으로 나눠 보는 건 아니니까요. 전 이야기 자체의 매력과 새로움을 봅니다. 물론 개인의 취향으로는 삶들을 통해서 현실의 지혜를 얻는다든지 반추하게 되는 그런 느낌의 영화들이 좋긴 하지만요.”
송강호와 ‘밀정’ 이야기를 나누면서 김지운 감독에 관해 묻지 않을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마지막으로 김지운 감독과의 재회 소감을 물었다. 두 사람은 지난 1998년 ‘조용한 가족’을 시작으로 이후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놈놈놈)에 이어 네 번째 호흡을 맞췄다.
“이걸 보고 김지운 감독과 굉장히 잘 어울릴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놈놈놈’도 일제시대를 다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리쉬함, 카메라 워크가 충분히 나올 거라 봤죠. 게다가 김지운 감독이 훨씬 더 스타일리시해졌더라고요. 영화 외적인 인프라가 있다면 최고 등급의 감독이 아닐까 합니다. 영화가 감독 능력 안에서 펼쳐지는 종합 예술인데 그런 쪽에서 가히 최고였습니다. 그만큼 풍성해졌고 내공도 쌓였어요. 더 놀라운 건 이 양반은 계속 변주해요. 장르든 스타일이든 계속 변주하는 작품을 해왔고 항상 변해 왔죠. 대단한 감독이라고 봅니다.”
시간과 경험에 의한 성장이 비단 김지운 감독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짧게는 김지운 감독과 마지막으로 만났던 8년 전, 그리고 길게는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스크린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1996년의 송강호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송강호 역시 더 깊이 있고 풍성해졌다.
“저도 모르는 사이 연륜과 경험이 만든 깊이감이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노력보다는 인간 송강호도 삶을 지속하니까 자연스레 생기는 거죠. 그런 것들이 작품 속에서 보이는 거고요. 그러니 젊었을 때 연기와는 다를 수밖에 없죠. 의도적으로 나이가 들었으니까 이렇게 하자는 건 없습니다. 기본적 연기 철학도 변한 건 없고요. 어떤 인터뷰를 보니 공유 씨가 그랬더라고요. 전 본능적으로 연기할 줄 알았는데 수없이 대사연습을 하더라고(웃음). 저 역시 아직도 매 영화가 두렵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왜 스포츠에 연습은 실전같이, 실전은 연습같이 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어렵겠지만, 그 말을 지키려고 할 뿐이죠.”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