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도 '변양호 신드롬'...구조조정 실무자에 면책권'검토해야
[뉴스핌=한기진 기자] “도와달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하소연하는 모습을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보였다. 이 회장은 “기업구조조정 담당 직원들이 한번도 쉬지 않고 고생하며 일하지만 산업은행 무용론이 나온다. 기업구조조정본부 (사람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다. 직원들이 더 이상 못하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게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이 '빈말'을 한 것은 아니다. 산은 직원들 사이 뿐만 아니라 은행권 전체적으로 기업구조조정업무 기피현상이 뚜렷한데 금융당국이 우려할 정도다.
이명순 금융위원회 구조개선정책관은 기자에게 “구조조정은 경험자가 해야 하는데 유능한 인재를 구조조정부서에 발령내면 휴직계를 내고 피하는 현상이 대부분 은행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산은 관계자는 “구조조정업무 맡으면 나중에 검찰 조사에 불려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퍼져 있다”고 했다.
산은 기업구조조정 1실과 2실 직원은 모두 70여명으로 지난 6월 정부가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 장관회의를 거쳐 '산업·기업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은 이후에도 새로운 인재가 영입되거나 인력이 보강되지 못했다.
비단 산업은행 만의 일이 아니다. 현대중공업은 그리스 선사 아미탱커스로부터 2000여억원 규모의 31만7000t급 유조선 두 척을 계약해놓고도 채권은행들이 선수금지급보증(RG)을 미루는 바람에 계약취소 위기에 처했다.
주채권 은행인 KEB하나은행이 채권단 공동의 RG 지원을 농협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KB국민은행을 상대로 설득하고 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중은행 여신심사담당 부장은 “사회 분위기에 밀려 대규모 여신을 실시했을 경우 나중에 면직 등 중징계를 받은 많은 경험 데이타가 쌓였기 때문에, 경영진에서 지시를 해도 실무진이 거부하는 게 은행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로 은행판(版) ‘변양호 신드룸’이 불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2003년 외환은행 매각 실무 책임자였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나중에 '헐값 매각' 혐의로 기소되자 일선 공무원들 사이에서 '열심히 일해 봐야 결국 손해만 본다'는 인식이 확산됐던 것처럼, 은행과 소속 직원들이 복지부동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석 새누리당 의원이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상에 채권금융기관 임직원과 담당 공무원에 대한 면책기준을 도입하기로 했지만, 아직 법안 발의를 못하고 있다. 공무원의 책임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일부 여론 때문이다.
산업은행 같은 금융공기업 임직원들은 공무원을 닮아 큰 파도가 밀려올 때, 어떻게 엎드려야 하는지 선배로부터 정확히 배운 사람들이다. 그 선배들은 ‘검찰 조사를 받거나, 해고를 당하거나’의 두 가지 선례를 보여줬다. 시중은행 책임자들은 금융위기 이후 아주 잘(?)만든 ‘위험관리시스템’ 뒤에 숨어버렸다.
면책권 남용이 걱정된다면 구조조정 실무자로 한정시켜야 한다. 기업경영도 그 손해가 경영상 결정이었다면 처벌을 면하게 하는 ‘경영 판단의 원칙’이 있지 않은가. 책임추궁 당할게 뻔하다면 누가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기업구조조정의 칼날이 되려 하겠는가.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