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들어 반덤핑 등 29개국, 169건 달해
중국 vs 미국·EU 분쟁 '불똥'
美 대선 등 국제정치 이슈도 규제 부채질
[편집자 주] 글로벌 불황에 자국 보호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미국, 인도, 중국 등을 비롯한 주요국에선 철강과 화학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를 내렸거나 조치를 준비중이다. 이로 인해 포스코, 현대제철, LG화학, 한화케미칼 등 국내 대표기업들의 수출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더욱이 미국 대선,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MES) 부여 등 국가간 정치·경제이슈가 맞물리면서 무역전쟁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뉴스핌은 최근 불고 있는 글로벌 무역전쟁을 진단해 본다.
[뉴스핌=조인영 기자] '우리나라 대표산업이 피해를 입고 있다.'
최근 미국과 EU 등을 중심으로 보호무역 기조가 확산되면서 타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높여 자국 산업과 기업을 보호하는 '수입규제'가 빈발하고 있다. 이는 인도,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출로 먹고 사는 국내 기업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18일 코트라(Kotra)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우리나라 수출품에 대해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수입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29개국으로 규제건수는 169건에 달한다.
작년 말 대비 규제국가 수는 1개국 감소했으나 전체 규제건수는 3건 증가했다. 특히, 전통 제조업인 철강과 화학제품에 대한 수입규제는 6건이나 증가해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사진=AP/뉴시스> |
반덤핑(AD)관세는 덤핑(정상가격 미만) 판매 및 이에 따른 산업피해 증명 시 덤핑 상품에 부과하는 관세이며, 상계관세(CVD)는 외국 정부가 특정산업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보조금에 대해 국내 산업 피해 증명 시 부과하는 관세를 말한다.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는 일정기간 특정물품의 수입량의 절대적 증가에 따른 국내 산업 피해(우려) 시 관세 인상 또는 수입량을 제한하는 조치다.
규제국가는 인도(31건), 미국(21건), 중국(11건), 인도네시아(11건), 브라질(10건), 태국(9건), 터키(9건) 등의 순이며 이 가운데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EU를 제외한 신흥국들의 수입규제가 126건으로 74.6%를 차지한다.
가장 많은 품목은 철강금속(83건)과 화학(47건)으로, 섬유(12건)와 전기전자(6건)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수입규제를 강화하는 이유로 내수침체, 공급과잉, 중국산 철강재 유입 증가 등을 꼽는다. 특히 대규모 감산, 감원, 설비폐쇄 등에 내몰리는 자국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주장은 글로벌 정치·경제 이슈와 맞물리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먼저 시장경제지위(MES) 부여를 원하는 중국과 이를 반대하는 미국·EU를 중심으로 3국간의 통상갈등이 무역분쟁으로 치닫고 있다.
MES란 한 국가의 경제활동이 정부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MES 지위를 받지 못하면 덤핑판정 시 자국내 원가를 인정받지 못해 패소할 확률이 높고, 제3국의 원가를 감안해 판정하기 때문에 고율의 덤핑방지관세를 부과 받아 수출에 타격을 입는다.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미국과 EU는 중국을 겨냥한 반덤핑 제소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올해 1~4월 반덤핑 제소건수는 12건으로 이미 작년 수준(11건)을 넘어섰다.
<사진=CEIC/포스코경영연구원> |
실제, 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일반화물용 컨테이너에 107.2%의 덤핑 마진율을 산정한 데 이어 멜라민과 불화탄소 냉매에 대해 각각 363.3%와 255.8%의 마진판정을 내렸다.
덤핑마진율이 100%를 넘어서면 해당 제품은 수출중단에 내몰리게 된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문제는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한국기업들도 덤핑관세 분쟁에 같이 휘말리는 데 있다.
미국 월풀사는 삼성·LG가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판매하는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요구했고 미국 상무부는 각각 반덤핑 예비관세 111%와 49%를 부과했다. 이번 조치로 양사는 현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상무부는 오는 12월경 최종 판정을 내린다.
중국의 밀어내기식 철강 수출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중국의 對세계 철강수출은 전년 대비 약 20% 증가한 1억1240만t을 기록하며 사상 최초로 1억t을 돌파했다.
중국 철강수출의 급격한 증가는 철강생산 과잉공급과 함께 내수침체로 인한 밀어내기 수출이 주 원인이다. 이에 미국은 값싼 중국산이 미국 철강산업을 위협하고 있다며 강력한 무역구제 대응을 주장한다.
<자료=코트라> |
이 같은 주장엔 한국도 포함된다.
미국 연방 의원 및 철강협회는 한국 역시 정부 보조금 및 초과 생산으로 낮은 단가의 철강을 미국으로 덤핑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초과 생산된 중국산을 한국에서 가공해 미국으로 재수출하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더욱이 한-미 FTA 체결 후 늘어난 무역적자에 불만이 고조돼 있는 상태다.
11월 대통령 선거라는 큰 이벤트를 앞둔 미국은 보수와 진보 모두 자국 산업보호를 정치적 이슈로 부각시켰다.
이에 미국 상무부는 철강 과잉공급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상무부 내 반덤핑 및 상계관세 관련 인력을 38명 증원키로 했다. 현재 한국산 제품 11건의 조사를 진행중으로, 중국, 인도에 이어 미국에 가장 많은 수입규제 대상국이 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런 반덤핑 제소 움직임은 미국 뿐만이 아니다. 베트남은 칼라도색 아연도금강판에 대한 세이프가드 청원서를 접수했고 EU는 지난 4월부터 역외산 철강수입감시제도를 도입해 오는 2020년까지 시행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는 특정품목의 수입량과 가격을 규제할 수 있는 '신무역법'을 시행하고, 터키는 수입품에 최저단위가격을 제시하고 수입허가를 발행하는 '수입감시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각국의 수입억제 정책에 우리나라의 타격은 상당히 클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중국의 밀어내기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對세계 철강수입 2206만t 중 62%에 달하는 1373만t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어, 중국이 미국향 수출량을 한국으로 전환시킬 가능성이 높다.
인도, 태국, 베트남 등 신흥국 역시 자국 철강과 화학산업 보호를 이유로 세이프가드나 반덤핑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결국, 우리나라는 각국의 수입재 방어와 중국의 밀어내기 역풍에 휘둘리는 이중고를 겪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수출길은 막히고, 수입산은 막아내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록 포스코경영연구원 박사는 "전세계로 수출되는 중국산 물량이 늘어나고, 미국 등 철강업체 적자가 심화되면서 세계적으로 자국산 보호가 강화되는 분위기"라며 "또 MES 부과를 둘러싸고 중국, EU, 미국 갈등이 심화되면서 반덤핑 제소가 늘고 있어 한국 기업들이 유탄을 맞고 있다. 기업 단위의 대응 뿐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정부의 역할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조인영 기자 (ciy8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