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악화냐 왜곡이냐…그린스펀 수수께끼 부상
[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최근 영국 채권시장이 일본만큼 가파른 수익률 급락세를 연출하며 '와일드 마켓(wild market)'으로 부상하고 있다.
11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과 영국을 필두로 비정상적으로 짓눌린 채권 수익률 흐름이 미국으로까지 확산되면서, 과연 채권시장 강세가 세계 경기 둔화 양상을 대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으로 인한 왜곡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 것 투자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 길트채 수익률, 브렉시트로 ‘반토막’
영국 국채(길트채) 수익률은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과 함께 가파른 하락 곡선을 연출했다.
오는 2068년 만기가 돌아오는 길트채 수익률은 브렉시트 결정이 났던 6월23일 하루 동안 2%에서 1.06%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수익률과 반대로 움직이는 길트채 가격의 경우 올 들어 53%가 뛰었는데 이 정도의 랠리는 주식시장에서나 볼 수 있지 국채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케이스다.
길트채 10년물·30년물 수익률 1년 추이 <출처=블룸버그> |
로이터 자료에 의하면 길트채 30년물이 두 달 동안 18.8%의 수익을 올린 것은 지난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ong-Term Capital Management) 긴급 구제 당시 이후 처음이다.
초대형 채권펀드 운용업체인 핌코(PIMCO)의 마이크 에이미 매니저는 길트채 움직임이 “정상적이지 않다”며 가격 상승 속도가 놀랍다고 논평했다.
길트채 30년물 가격이 지난 1년 동안 기록한 상승폭 31%는 같은 기간 일본 국채(JGB) 30년물 가격 랠리와 동일한 수준으로, 다만 일본은행(BOJ)처럼 통화완화 정책을 통해 경제 회복이라는 시급한 과제를 떠안은 영란은행(BOE)의 사정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움직임이다.
앞서 BOE가 700억파운드 규모의 양적완화를 발표하면서 투자자금은 장기채로 몰렸고 영국뿐만 아니라 스페인, 아일랜드 등에서도 기준물인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사상 최저치로 밀렸다. 수익률 하락 흐름은 이번 주 BOE가 국채 매입을 시작하자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 왜곡 vs. 경기반영? ‘수수께끼’
비정상적인 길트채 움직임은 대서양 건너 미 국채 수익률까지 짓누르고 있어 투자자들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미국 경제 성장세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되살아나면서 미국채 금리도 위를 향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길트채 여파로 미국채 수익률도 눌리고 있기 때문.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지난 한 달 사이 강력한 고용 지표와 인플레이션 전망 급등에도 불구하고 1.57%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한 낮은 수익률 흐름이 세계 경제의 암울한 전망을 대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중앙은행들이 채권 매입으로 시장을 왜곡하고 있는 것인지 투자자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컨설팅업체 롱뷰이코노믹스 창립자 크리스 와틀링은 지난 2000년대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올렸는데도 국채 장기물 금리가 동반 상승하지 않아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장이 이를 ‘수수께끼(Conundrum)’로 표현했었는데 지금이 비슷한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골드만삭스 유럽 매크로리서치 공동대표 프란체스코 가르자렐리는 “미국 국채시장이 경기 회복을 반영하려 노력 중이지만 국제적 요인 때문에 가로막혀 있다”며 “미국이 세계 금리를 올리려 해도 일본에 영국까지 가세해 이를 끌어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시드니 특파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