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편에서 이어짐>
[뉴스핌=이승환 기자] 1년 전인 2015년 6월 중국 사회는 주식투자 광풍에 휩싸여 있었다. 긴 잠에 빠져있던 중국 주식의 주가가 돌연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주식투자에 뛰어 든 것. 사람들은 투자금 마련을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학생들까지 학자금으로 투자에 나섰다. 2014년 말부터 이듬해 6월까지 중국 증시로 유입된 레버리지(차입) 자금만 900조원에 육박했다. 신규 개인 계좌는 매달 333만개씩 늘었다.
중국 사회 전체가 함께 공유한 일확천금의 꿈은 ‘6월 15일’을 기점으로 돌연 악몽으로 뒤바뀌었다. 중국 증시 상하이지수는 12일 5166포인트(장중 최고치 5178포인트)를 기록한 뒤 3주만에 35% 가까이 폭락했다. 이 짧은 시간 당시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의 14배에 해당하는 3조3000억달러 가량이 중국 증시에서 사라졌다. 손실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했고, 증권사 직원들은 “뛰어내리지 마라 곧 반등한다”라는 현수막을 거리에 내걸었다.
1년이 지났지만 중국 증시는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갇혀있다. 시장과 당국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조그만 충격에도 돈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끊임 없이 출렁이고 있다. 중국 증권업계의 한 전문가는 “중국 증시 6월 재앙이 금융시장은 물론 중국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지난 1년전 중국 주식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또 이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상·하 2회에 걸쳐 뒤돌아 본다.
◆ A주 베어마켓이 남긴 기록들
중국증시 상하이지수는 2015년 6월12일 5178포인트를 고점으로 하락하기 시작, 1년 넘게 베어마켓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13일 상하이지수 종가인 2833포인트를 기준으로 1년 동안 45% 넘게 하락했으며 연초 한때 2655포인트(1월26일)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6월 기준 41조1245억위안까지 치솟았던 상하이 증시의 유통주 시가총액은 이달 8일 25조15억위안까지 쪼그라들었다. 선전증시를 포함한 중국 증시에서 지난 1년 동안 약 25조6900억위안이 증발했다. 이는 독일의 2014년 국내총생산(GDP)와 맞먹는 규모다.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거래량도 급감했다. 지난해 6월 1조602억위안에 육박하던 상하이 시장의 거래량은 이달 8일 기준 1773억8000만위안까지 축소됐다. 중국결산공사의 통계를 보면 작년 5월 마지막주 A주에 새롭게 유입된 투자자 수는 164만4400명으로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한 반면, 1년 뒤인 5월 넷째주에는 33만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종목별로는 1년새 A주 2856개 종목 중 991개 종목의 주가가 반토막 났다. 이중 20여개 종목은 70% 넘게 폭락했다. 이 기간 주가가 상승한 종목(IPO주 제외)은 단 140여개에 불과하다. 주당 가격이 100위안을 넘어선 일명 ‘황제주’도 단 15개만 남았다.
중국 증권등기결한유산공사에 따르면 지난 1년 중국 A주 투자자들은 평균 50만위안의 손실을 입었다. 지난 6월3일 기준 A주 주식을 보유중인 A주 투자자 5107만3700명을 기준으로 추산한 결과다. 50만위안은 중국 내 3~4선 지방 도시의 웬만한 집 한 채 값이다. 중국의 한 경제매체가 2만여명의 A주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60%의 투자자가 여전히 불마켓 당시 매입한 주식을 처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나타났다. 반면 지난 1년간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아치우고 시장을 떠난 고액 투자자(투자액 1억7000만원 이상)의 수는 70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 A주 파동 무엇이 낙폭을 키웠나?
중국 당국은 지난해 6월 중국 증시의 폭락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등 정책성 투자기관으로 구성된 일명 ‘국가대표팀’을 통해 증시 부양에 나섰다. 당국이 A주 시장에서 주식을 직접 매입해 시장을 떠받치기 시작한 것. A주 폭락이 본격화한 작년 6월 29일 중국 당국은 처음으로 250억위안 규모의 자금을 시장에 투입, 블루칩 종목들을 사들였다. 이후 국가대표팀은 중신증권 등 시중 증권사들과 연합해 증시가 출렁일 때마다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작년 6월 이후 5개월 간 1조8천억 위안을 시장에 쏟아 부었다.
이 같은 증시 부양 조치는 시장을 왜곡해 오히려 베어마켓을 장기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주가가 하락하면 국가대표팀이 등장해 손실을 메워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 전반에 확산됐다. 약세장에서 매입하고 당국 개입으로 주가가 치솟는 타이밍을 노려 매도하는 도덕적 해이 문제까지 불거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당국의 개입이 잦아질수록 투자자들의 내성도 강해지면서, 시장 안정화에 수반되는 비용이 빠르게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증권업계의 한 전문가는 “친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증시 부양책이 버릇 없는 아들을 만들었다”며 “향후 또 다른 위기가 왔을 때 중국은 지금보다 더 강하고 직접적인 부양책을 내놓을 수 밖에 없어졌다”고 진단했다.
올 새해 벽두 중국 금융시장을 패닉으로 몰아 넣은 서킷브레이커 파동 역시 당국의 정책 혼선이 빚은 결과물이다. 지난 1월 4일과 7일 중국 증시가 폭락하면서 총 4차례에 걸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 거래가 두 번이나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1월 4일은 중국 정부가 서킷브레이커를 도입한 후 첫 거래일이었다는 점에서 그 충격은 더 컸다.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기 앞서 중국 증시에는 불안한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중국 인민은행의 공격적인 위안화 절하 행보 여파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지난해 6월 도입된 상장사 대주주들의 지분 매각 제한조치 종료를 앞두고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던 것이다. 이에 중국 당국이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서킷브레이커였다. 당시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관계자는 “서킷브레이커가 중국 증시 안정화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국의 기대와는 달리 2016년 첫 거래일 서킷브레이커는 재앙을 초래했다. 서킷브레이커 발동이 임박하자 투자자들이 미리 서둘러 팔아치워야 한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증시 하락을 더욱 부추긴 것. 두 번째 서킷브레이커가 작동된 1월 7일 중국 증시는 개장 15분만에 조기 폐장되며 금융시장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겼다. 결국 중국 당국이 증시 안정화를 위해 내놓은 대책들이 도리어 폭락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중국 당국은 다음날 부랴부랴 서킷브레이커 제도를 잠정 중단시키고, 앞서 증시 불안의 원인이었던 대주주 지분 매도 제한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증권 업계의 한 전문가는 “지난 1년간의 베어마켓은 사실상 중국식 시장 관리 시스템의 실패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며 “결국은 시장이 승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이승환 기자 (lsh8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