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의 엄격한 보호 아래에서 자란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그에게 새로운 하녀 숙희(김태리)가 찾아온다. 이모부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던 그는 순박한 숙희에게 조금씩 의지한다. 하지만 숙희는 사기꾼 백작(하정우)과 함께 히데코의 돈을 가로챌 생각에 바쁘다.
알려진 대로 영화 ‘아가씨’는 영국 작가 새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7년 만에 국내 복귀작으로 이 소설을 택한 박찬욱 감독은 원작의 반전을 스크린에 옮기며 얽히고설킨 네 인물의 사연을 그려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부 이야기는 빼고(뜻밖에 박찬욱 감독은 원작 속 주요 인물의 비중을 줄이고 출생의 비밀이라는 큰 반전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또 더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입혔다.
원작을 재해석하며 1840년대 영국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1930년대 경성으로 바꿨다. 하지만 ‘계급 사회’라는 제도를 차용하기 위해 배경으로 삼았을 뿐 박찬욱 감독은 일제강점기를 다른 용도, 예컨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데는 사용하지 않았다. 두 여성의 사랑 이야기에 시대상을 반영한 원작과는 다른 방향이다. 물론 박찬욱 감독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한일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만들었다고 했지만, 개인감정과 욕망에 더 중점을 둬서인지 쉽게 읽히진 않는다. 보는 이에 따라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다.
미쟝센은 그간의 박찬욱 감독 작품이 그랬듯 훌륭하다. 특히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이 크다. 이야기가 주로 펼쳐지는 코우즈키의 대저택에는 동서양이 한데 어우러진 다양한 공간이 등장, 관객의 시선을 앗아간다. 서재, 히데코 방, 응접실 등 매 장소, 매 장면이 너무도 정성스러워 구경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더욱이 코우즈키 서재의 경우 단순히 극의 배경을 넘어 상징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도 있다.
숱한 화제를 모았던 동성 간의 정사 장면은 낯설지만 불편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레즈비언 포르노로 읽히지 않아 흥미롭다. 박찬욱 감독은 특정 행위로 성적 텐션을 높이는데 주력하기보다 정신적 교감에 집중했다. 그렇게 부딪히고 부스러지는 이들의 모습은 때때로 찬란해 보이기(둘의 감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관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까지 한다. 특히 이런 지점은 짓궂고 우악스러운 행위로 성애를 느끼는 남성 캐릭터들과 대비돼 더 돋보인다. 덧붙이자면, 박찬욱 감독은 줄곧 남성 캐릭터에 굴욕적 대사와 상황을 안겨 여성을 단순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베드신만큼이나 화제를 모은 낭독회 신은 이 영화의 백미다. 히데코의 시각으로 흘러가는 2부에서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장면으로 촬영부터 미술, 음악, 연출까지 그 합이 기막히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 선 김민희의 연기가 짜릿하다. 물론 김민희는 이 외에도 러닝타임 내내 놀라운 표정 연기와 감정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김해숙, 문소리, 조은형 등 흠잡을 데 없는 배우들의 열연 속에서도 단연 빛난다.
단, 제아무리 가장 상업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할지라도 ‘박찬욱 영화’인만큼 호불호는 갈릴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건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섬세하고 비폭력적이며 굉장히 유머러스하다. 장르를 단순 로맨스로 한정한다면, 더없이 완벽하고 명쾌한 해피엔딩까지 품었다. 청소년 관람불가.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