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실보다 득 많아…남용소지는 제한"
[뉴스핌=김나래 기자] 19대 국회가 임기 막판에 상임위원회 차원의 청문회 활성화가 핵심 내용인 '국회법 개정안(이하 상시청문회법)‘을 통과시켜 20대 국회가 또다시 '숙제'를 안게 됐다.
19대 국회에서는 18대 국회 막바지에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 이른 바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4년 내내 '식물 국회'라는 오명을 씻지 못했다.
현재 상시청문회법에 대해서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중요안건 외에 '소관 현안'도 청문회 대상이 핵심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와 여당은 '행정마비법'이라구 주장하고 있고 야당은 '일하는 국회법'이라고 주장한다. 청와대는 '거부권 행사'를 고심하지만 쉽게 거부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런 여야 대립 속에서 전문가들은 행정부의 마비를 걱정하면서도 제한적 범위 안에서 시행된다면 '상시청문회법'은 협치를 구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전문가들 "남용 소지 제한하면 해볼만"
기존 국회법에서는 ‘중요한 안건의 심사와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로 상임위의 청문회 개최 조건을 규정했지만, 개정안에서는 ‘소관 현안의 조사’라는 조건을 더해 개최 요건을 확대했다.
상임위에서 소관 현안의 조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재적위원 과반 출석에 출석위원 과반 찬성’으로 의결하면 청문회가 열리는 것이다. 즉, 20대 국회는 ‘여소야대’ 구도로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손을 잡으면 언제든 야권 주도로 상임위 청문회가 열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개정으로 청문회가 좀 더 쉽고 폭넓은 주제에 대해 열릴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국정감사와 달리 상시청문회는 국가적 현안과 대형 비리 사건에 대해 국회차원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상시청문회가 도입되면 행정 업무가 일부 늘어나는 일은 발생하겠지만, 각종 의혹의 진실규명과 국민 알권리 충족에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문회가 그동안 열린 횟수도 적고 국회 나름대로 역할이 부족했다는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상시청문회법은 국회 위상을 높여줄 것이다"라며 "너무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만 아니고 한 번 해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부정적 측면 때문에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보다 상시청문회법의 더 많은 긍정적 측면을 봐야 한다는 것이 양 교수의 생각이다.
다만, 야당은 상시청문회를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배제시키는 모습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남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장치나 상시 청문회의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야당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시청문회법에는 각 상임위는 담당하는 분야에 떠오르는 이슈가 있다면 재적위원 과반 출석·과반 찬성의 의결 절차를 거쳐 청문회를 개최, 증인 및 참고인 등을 국회로 불러 진술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이를 두고 남용해 입법마비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내영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 의회에도 상시청문회 제도가 안착을 했는데 청문회는 입법부의 권리고 행정부의 견제역할 중 하나다"라며 "다만, 모든 현안에 대해 청문회를 한다면 입법교착이 더 심해질 수 있어 제도적으로 보완과 타협이 돼야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미 의회에 있는 상시청문회제도가 안착이 돼 행정부 마비는 없었다는 점을 주목하라고 지적한다. 미 의회의 청문회는 입법 정보 수집을 위한 입법 청문회, 행정부를 감독하기 위한 감독 청문회, 한국의 국정조사 기능을 수행하는 조사 청문회, 고위 공직자의 임명 동의안 처리를 위한 인준 청문회 등 네 가지로 구분된다. 상시청문회를 위해서는 취지에 맞게 기능과 역할에 대한 세분화된 논의도 함께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장고' 들어간 박 대통령, '거부권 행사' 선택은?
상시 청문회법이 23일 오전 정부로 이송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보름 내인 내달 7일까지 개정안의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청와대는 '입법마비법'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거부권 행사'에는 신중모드를 보이고 있다.
먼저, 상시 청문회법이 국회 운영사항이기 때문에 3권 분립 침해 등을 명분으로 거부권을 행사하긴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거부권을 행사하려면 명백히 잘못된 법이라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명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소야대 정국에서 협치정치를 하기로 뜻을 모은 상황에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앞으로는 야당의 협조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소야대인 20대 국회에서 야당이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된 만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개정 국회법의 재의결이 무산될 가능성도 낮다. 또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당내 갈등과 함께 레임덕이 빨리 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19대 국회에서는 정의화 국회의장을 청와대와 여당이 압박하면 타협해주는 것들이 있었지만 20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을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져가게 되면 통과되기 어렵지 않겠냐"고 예상했다. 이어 "새누리당이 모두 집단적으로 반발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도 없어 보인다. 차라리 상임위 내부의 의결정족수 강화법 등을 어필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회법이 개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차피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부가 야당의 청문회를 피할 방법은 없다. 종전 국회법에서도 청문회는 국회선진화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과반수가 마음만 먹으면 청문회를 할 수 있었다. 20대 국회의 모든 상임위에서 두 야당은 과반을 차지할 수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청문회를 하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정치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야권이 청문회를 남발할 경우 국민적 지탄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우세하다. 또 정부 부처에서 청문회에 적극 협조하지 않을 경우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야당도 청문회 개최에 신중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뉴스핌 Newspim] 김나래 기자 (ticktock03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