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선굵은 연기로 유명한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62)이 영화 '곡성'으로 한국 팬들과 만났다. 첫 한국영화로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택한 그는 마을에 떠도는 의문의 사건과 기이한 소문의 시발점이 되는 외지인을 열연했다.
내한 VIP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접한 쿠니무라 준은 다음날인 지난 10일 서울 중구 소공로 더플라자호텔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처음 본 영화가 꽤 만족스러운 듯 마주한 쿠니무라 준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환한 미소가 번졌다.
“VIP 시사회에서 영화를 처음 봤어요. 보고 나서 좋은 영화가 완성됐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굉장히 기쁘죠. 사실 시나리오도 아주 좋았어요. 처음 출연 섭외를 받고 시나리오를 읽은 후 감독님과 일본에서 만났거든요. 그때 출연 결정을 한 것도 일단 시나리오가 굉장히 좋아서였죠. 물론 감독님을 뵀을 때 잘 맞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현장에서의 나홍진 감독 스타일을 알았냐고요? 당연히 몰랐죠(웃음).”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을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미묘한 웃음이 오갔다. 사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쿠니무라 준의 첫 한국인 파트너 나홍진 감독은 업계에서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쿠니무라 준의 극중 집에 실제 구더기가 핀 동물 사체를 갖다 뒀고, 고라니를 날로 먹는 장면에서는 육회를 직접 먹으라고 지시했다.
“제일 힘들었던 건 역시 고라니였죠. 그 좋아하던 육회를 속이 이상해서 그만 찍자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폭포수 맞는 신도 육체적으로 힘들었고요. 폭포가 산 높은 곳에 있어서 올라가는 게 힘들었어요. 또 당시 왼쪽 고관절에 통증이 있어서 쉽지 않았죠. 근데 감독님이 걱정은 해주시는데 허락을 안해주시니까(웃음). 막상 촬영하면 한 번만 더 가자고 해요.”
그러면서 쿠니무라 준은 “절대 나쁜 뜻이나 디스를 하는 건 아니다. 보통 감독이라는 게 다 그런 직업”이라며 웃었다. 그런 그에게 그럼 나홍진 감독만의 특징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간 리틀리 스콧, 쿠엔틴 타란티노 등 세계적인 감독과 작업해온 그이기에 더욱 궁금한 부분이었다.
“큰 시스템은 다르지 않아요. 다만 한국영화는 감독이 많은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갖고 있죠. 대부분 파트별로 상의하는데 여긴 감독이 모든 책임을 지고 하나하나 결정했어요. 물론 이게 나홍진 감독만의 스타일인지 한국 스타일인지는 모르지만요. 아무튼 그런 면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비슷하더라고요. 그도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고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집중하죠. 반면 키타노 타케시 감독의 경우는 완전히 맡기는 스타일이고요. 둘 다 장단점이 있죠(웃음).”
연기에 대한 질문도 빠질 수 없었다. 사실 이번 영화에서 쿠니무라 준의 연기는 굉장히 강렬하고 섬뜩하다. 덕분에(?) 극장을 나온 뒤에도 그 잔상은 꽤 오래 남는다. 물론 그간 종종 보여준 모습이지만, 또 때때로 인자한 역할(예컨대 영화 ‘엄마 시집 보내기’ 등과 같이)을 통해 자상하고 따뜻하게 관객을 다독였던 그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극단적 이미지를 오갈 수 있다는 건 큰 재미죠. 극과 극 캐릭터일수록 더 재밌게 할 수 있어서 즐길 수 있어요. 근데 전 대체로 연기할 때 전체적으로 하나의 인물을 만들어낸다기보다 각 장면에서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하죠. 전체적 일관성보다 각 장면이 요구하는 걸 하는 거죠. 또 역으로 생각해요. 이번에도 그랬어요.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언급할 순 없겠지만, 결말을 생각해서 거꾸로 그려간 거죠. 이 엔딩을 그리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다 보니 어느새 쿠니무라 준의 출연작은 백여 편에 달한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갈증’ ‘지옥이 뭐가 나빠’ ‘킬빌-1부’ ‘이치 더 킬러’, 드라마 ‘지지 않는 태양’ ‘하늘을 나는 타이어’ 등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했다. 36년이란 꽤 긴 시간을 활동한 걸 감안해도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글쎄요. 많은 작품을 한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웃음). 다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제가 배우 일을 즐거워하기 때문이죠. 주연이냐 조연이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제 직업이 배우라는 게 전제에 있고, 일단 그 안에서 자기 역할이 뭐든 모두가 같이 작품 하나를 만들어나간다는 그 재미가 크거든요. 전 이런 작업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걸 즐기고 있으니까 그게 원동력이 돼 자연스럽게 많은 작품을 하게 된 게 아닐까요.”
쿠니무라 준은 이렇게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고 했다. 이번 ‘곡성’의 경우 한국 영화 데뷔작, 그 속에서 인연을 맺은 나홍진 감독을 비롯해 곽도원·황정민·천우희가 가장 큰 ‘얻음이자 기쁨’이다. 물론 데뷔 36년 만에 칸영화제를 처음 밟는 것도 그렇다.
“일단 제 첫 한국영화 출연작이라는 점에서 ‘곡성’은 의미가 있죠. 그동안 왜 한국영화는 강한 힘을 갖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촬영하면서 의문이 풀렸고요. 또 나홍진이라는 하나의 큰 재능과 일할 수 있었던 것, 훌륭한 한국 배우들과 연기하면서 현장에서 행복을 느꼈다는 것도 큰 얻음이죠. 거기다 칸까지 가게 됐잖아요(웃음). 예전에 가와세 나오미 감독과 한 주연작이 칸에 초청된 적이 있는데 예산 문제로 못갔거든요. 근데 이번에 이렇게 가게 되니 설레죠. 기대하고 있어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