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투자 막는 것은 주식시장의 새로운 매커니즘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미국 경제 성장의 축을 이루는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가 동시에 마비 증세를 보이고 있다.
천문학적인 현금 자금을 국내외에 비축한 미국 기업들이 투자를 사실상 동결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시장 전문가들을 또 한 차례 실망시킨 것은 민간 소비 지표다. 고용 호조에도 지난달 소매 판매가 0.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투자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 <출처=블룸버그통신> |
자동차 판매가 지난달 소비 위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의류와 외식, 온라인 쇼핑까지 소비자 지출의 전반적인 분야가 후퇴한 것은 가벼운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은 요인이 다름아닌 연방준비제도(Fed)의 경기 부양책이라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정책자들의 의도대로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위험자산으로 투자 자금의 유입을 이끌어냈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는 것.
로버트 버클랜드 씨티그룹 글로벌 주식 전략가는 13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의 칼럼을 통해 양적완화(QE)로 말미암아 형성된 주식시장의 새로운 매커니즘이 상장 기업들의 투자를 저해하는 한편 자본 배분의 왜곡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중앙은행이 만들어낸 유동성 기류에 편승해 주식시장으로 발을 옮긴 투자자들 사이에 기업의 중장기 성장을 위한 투자보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 주주 환원을 선호하는 쏠림 현상이 극심해졌고, 주주들의 눈치 보기와 주가 관리에 급급한 기업 경영자들은 눈 앞에 놓인 이해를 챙기는 데 혈안이 된 나머지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 및 잠재 리스크가 통상 일순위로 꼽히지만 실상 자본시장의 논리가 핵심적인 배경으로 깔렸다는 것이 버클랜드의 설명이다.
주식시장이 경기 상황을 반영한다는 점에만 주목할 뿐 주식시장이 실물경기에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정책자들이 간과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시행한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 <출처=블룸버그통신> |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상장 기업의 설비 및 연구개발(R&D) 투자가 전년 대비 2%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 투자 활황기 때 두 자릿수의 성장을 기록했던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결과다.
이날 보도된 주간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보수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앙은행이 중차대한 실수를 피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불확실성이 높은 여건 속에서는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이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성급한 통화정책 정상화보다 실물경기 회복을 도모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입장이지만 오히려 상반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의견에 설득력이 실리고 있다.
저금리와 저유가 속에서도 민간 소비가 뒷걸음질 치는 것도 기업의 투자 위축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월가 투자가들의 진단이다.
업계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미국 소매 판매가 0.1%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 밖의 소비 위축은 실물경기 회복을 민간 지출에 의존하는 연준 정책자들 입장에서도 난감한 부분이다.
옐런 의장은 지난달 뉴욕 이코노믹 클럽 연설에서 안정적인 소득 상승과 가계 재무 상황 개선, 에너지 가격 하락 및 금융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 등에 힘입어 민간 소비가 확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마이클 페롤리 JP모간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민간 소비가 소프트 패치(일시적인 후퇴)를 맞았다”며 “고용 지표 호조를 감안할 때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실업률 하락에도 기업들이 장기 성장을 위한 고급 인력 채용을 기피, 고용의 질적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는 데다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로 소비자들이 지출보다 부채 축소에 무게를 두는 움직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