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기어이 흘러가 사라지니 유행가인 게다.” 대성 권번의 권번장 장영남(산월 역)은 유행가를 하겠다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천우희(연희 역)는 기어이 이 유행가를 택한다. 기어이 흘러가 사라지지 않고 조선의 마음을 노래하기 위해.
배우 천우희(30)가 신작 ‘해어화’를 들고 관객을 만난다. 말을 이해하는 꽃이란 뜻을 지닌 영화 ‘해어화’는 1943년 비운의 시대, 최고의 가수를 꿈꿨던 마지막 기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극중 천우희는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의 소유자 연희를 열연했다.
연희는 소율(한효주)의 단짝 친구. 하지만 소율과 달리 정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인물로 인기 가수 이난영(차지연)의 노래를 듣고 대중가요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작곡가 윤우(유연석)를 만나면서 그의 꿈은 현실이 된다.
“사실상 이게 상(천우희는 지난 2014년 ‘한공주’로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을 타고난 후 첫 작품이에요. 그래서 당시 많은 분이 상 타기 전에 ‘써니’ ‘우아한 거짓말’ ‘한공주’ 등 어렵고 무거운 작품들이 많았으니까 다른 느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떠냐고 했죠. 회사 입장도 그랬고 가까운 지인들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래서 ‘그래? 그렇다면 내가 좀 모험을 해봐야겠다, 도전을 해보자’고 마음 먹었죠.”
하지만 천우희가 단박에 출연을 결정한 건 아니다. 이와 관련, 천우희는 “내 직관을 믿는 편인데 선뜻 손대기 어렵더라”고 말했다. 혹 노래 때문이냐는 질문에 “그건 아니지만, 스트레스가 크긴 했다. 연기도 잘 안되면 괴로운데 거기에 노래까지 더해진 셈”이라고 답했다. ‘한공주’ 때도 했던 노래지만, 이번에는 ‘조선의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의 소유자’라는 설정이 더해졌으니 여간 부담됐던 게 아니다. 그래서 기본 발성부터 1940년대 발성, 그리고 트로트까지 4개월간 수업도 받았다.
“그래도 만족스러워요. 노력한 결과물, 그리고 저 자신도 나아진 모습이 화면에 잡혀서 기분이 좋죠. 더군다나 많은 분이 잘 들었다고 해주시고요. 물론 제가 가수가 아니니까 한계는 있었어요. 하지만 최대한의 모습, 목소리를 내보여주고 싶었죠. 근데 노래로 감정 표현을 하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연기와는 다르단 걸 깨달았어요. 노래에 집중하니 목석이 돼버렸죠(웃음). 감정전달 때문에 많이 낙담했어요. 혼자 연습하다가 울컥하기도 했죠.”
다행히 천우희의 말처럼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은 그에게도 또 관객에게도 꽤 만족스러운 결과를 안겼다. 하지만 좋은 점이 있으면 아쉬운 점도 있는 법. 감정 이입과 전달에서는 혹평이 따랐다. 당연히 천우희의 연기를 논하는 말이 아니다. 그저 사랑에 빠지는 연희와 윤후, 두 캐릭터의 전사가 부족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지점이 많다.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저도 꽤 아쉬웠어요. 연희와 윤후의 감정의 결을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관객이나 연희를 연기하는 저도 더 공감하고 연민을 느낄 수 있었을 테니까요. 사실 촬영 당시에는 그런 장면이 있었어요. 하지만 편집과정에서 빠졌죠. 근데 그건 당연한 거로 생각해요. 영화는 중심인물의 심리상태에 주가 돼 따라갈 수밖에 없죠. 다각도의 시선으로 보는 영화도 있지만, 대체로 영화 자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집중하는 게 맞아요.”
사실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 설명이 부족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전작 ‘손님’(2015)에서도 천우희의 역할은 그랬다. 하지만 그때마다 천우희는 “캐릭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작품 전체”라고 선을 그었다.
“제 부분보다는 전체적인 영화의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더 작은 역할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위치가 달라지거나 비중이 달라졌다고 해서 생각이 달라진 건 없어요. 예전에는 많은 부분을 표현 못했는데 지금은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확실한 건 작품 마다 성향이 다르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같이 만들어나가는 배우와 연출이 함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걸 일치해가며 만들어가는 거죠.”
‘한공주’로 세상을 떠들썩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연기 내적으로 외적으로나 그는 변한 건 없다고 덧붙였다. 물론 실제로도 그래 보였다. 여전히 롤모델을 정해 따라가기보다 현실에서 영감을 받는 걸 선호하고, 사람들이 영화 속 인물로서 봐주는 것이 좋다며 마주한 천우희가 활짝 웃었다.
“전 남들보다 성장의 속도가 늦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기에 머물러 있지는 말자는 생각을 항상 하죠. 하루하루,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한 계단씩 올라가고 싶거든요. 1mm씩이라도 성장했으면 좋겠고 그래서 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죠. 만족하면 안일해지고, 자만하면 도태될 테니까요. 사실 청룡영화상 이후로 주변 시선이 바뀌긴 했어요. 기대도 커졌고요. 그래서 때때로 내가 아닌 다른 것의 영향으로 선택할 순간도 오겠죠. 하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 주도적, 주체적이 되고 싶어요. 꿋꿋하게(웃음).”
한편 13일 ‘해어화’를 선보인 천우희는 오는 5월12일 황정민, 곽도원과 함께한 신작 ‘곡성’으로 또 한 번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곡성’은 외지인이 나타난 후 시작된 의문의 연쇄 사건 속 소문과 실체를 알 수 없는 사건에 맞닥뜨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곡성’은 ‘해어화’와 또 다른 모습일 거예요. 이야기 자체도 무시무시하지만, 제 모습은 아주 가관입니다. ‘저건 대체 뭘까?’ 싶으실 걸요? 모처럼 ‘해어화’에서 의상도 갈아입고 화장도 하고 조금 예쁜 역할했다 싶었는데 말이죠(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