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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 회장, M&A 잇따라 성공···'뚝심'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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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삼성 방산계열사 인수...글로벌 10위권 방산업체 도약 목표

[뉴스핌=김신정 기자] 한화그룹이 두산그룹의 방산계열사인 두산DST를 품에 안았다. 지난해 삼성 방산계열사 인수성공에 이은 결실이다. 이번 인수과정에서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방산사업 확대에 대한 집념이 또 한번 발휘됐다.

30일 한화그룹은 방산계열사인 한화테크윈이 6950억원에 두산DST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시장에선 재무구조개선 작업이 한창인 두산그룹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7000억원 이상을 희망하는 반면, 인수후보군들은 5000억원대의 인수가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입찰 전부터 강력한 경쟁후보였던 LIG와 막판 경합을 벌인 한화는 두산측이 원하는 7000억원에 가까운 입찰가 6950억원을 제시하면서 인수에 성공했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과정에는 김 회장의 결단력이 필요했다. 인수가격을 제시하기 전 절차상 최종적으로 김 회장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한화그룹>

실제 김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지금은 숲보다 나무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며 "기존 사업인 방산,유화부문은 규모의 경쟁력을 넘어 실질적 시너지 확대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 회장의 인수합병(M&A)에 대한 집념과 결단력은 앞서 지난해 삼성과의 방산(현 한화테크윈, 한화탈레스),화학계열사(현 한화토탈, 한화종합화학) 빅딜과정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김 회장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알려졌다. 김 회장이 평소 경제인 선배인 이 회장을 잘 따르곤 했는데 M&A도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이뤄졌다는 전언이다.

당시 한화는 삼성으로부터 방산, 화학계열사 4개사를 총 1조8500억원에 넘겨받았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한화가 삼성으로부터 알짜기업을 다소 합리적인 가격에 인수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3세경영 승계작업을 서서히 벌이고 있는 김 회장은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에게 유화·방산사업을 넘겨 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이 분야의 덩치를 키워 장남에게 넘겨줄 개연성이 크다.

한화테크윈은 이번 두산DST인수를 통해 탄약·유도사업의 수직계열화는 물론 추진기관, 항법, 발사대 분야에서 독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여기에 장갑차, 자주포, 대공무기 등 지상장비 포트폴리오 확대와 레이저 무기시장 선점도 가능하게 됐다.

특히 두산DST의 항법 기술은 ㈜한화의 유도무기와 장갑차 등 지상장비 기술은 한화테크윈의 지상장비(K-9 자주포 등), 한화탈레스의 방산전자와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분야로, 제조 및 R&D역량 강화, 해외 수출 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한화그룹은 지난 1970년대 방산사업을 처음 시작했다. 이후 탄약과 정밀유도무기, 항공기 유압부품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해왔다. 지난해에는 삼성 방산계열사 인수를 통해 항공기·함정용 엔진과 K-9자주포 등 지상장비 , 지휘통제·통신으로 사업범위를 확대했다.

이에 따라 한화그룹은 중장기 전략으로 글로벌 10위권 방산업체 도약하겠다는 목표다. 방산 4개 회사(㈜한화, 한화테크윈, 한화탈레스, DST) 역량을 결집해 경쟁력 있는 글로벌 종합방산업체로 성장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한화그룹은 방산계열사 외 지난 2002년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63시티(현 한화 63시티)를 인수한데 이어 2010년 푸르덴셜투자증권(한화투자증권과 합병), 2012년 큐셀(현 한화큐셀), 지난해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현 한화종합화학, 한화토탈) 등 유화, 에너지, 금융, 유통분야에서 굵직하고 다양한 기업을 인수합병해 덩치를 키워왔다.

 

[뉴스핌 Newspim] 김신정 기자 (aza@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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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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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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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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