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에 경영진 책임 '제한' 신설…"도덕적 해이 경계해야"
[뉴스핌=송주오 기자] 제주항공이 경영진의 책임을 대폭 낮춘다. 경영진의 빠른 의사 결정과 신사업 육성 등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차원이지만,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이날 오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상공회의소에서 제11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제주항공은 이날 주총을 통해 재무제표 승인과 사내이사 3명 선임, 보수한도 승인 등을 처리한다.
관심을 끄는 것은 정관 변경이다. 이사회의 권한은 강화하고 책임은 낮추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제주항공은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 감경을 신설하고 재무제표 승인권한을 이사회에 위임하는 안을 추진한다.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 감경은 사내이사의 경영상 판단에 따른 금전적 책임을 제한하는 것으로 최근 1년간 보수액(연봉+상여금 등 포함)의 최대 6배까지만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보수 1억원을 받는 대표이사가 신사업 추진 결과 회사에 30억원의 손해를 입히게 될 경우 대표이사는 최대 6억원만 책임지면 된다.
제주항공이 정관 변경을 통해 경영진의 책임을 낮춘다. <사진=제주항공> |
이사에 대한 책임 감경은 지난 2011년 상법 개정에 따른 것이다. 개정 상법이 적용된 2012년 많은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을 시도했다. 실제로 현대제철과 LS산전, LS전선 등이 주총을 통해 도입에 성공했다.
반면 도입에 실패한 사례도 적지 않다. 포스코와 일동제약은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도입을 철회한 바 있다. 당시 소액주주들이 앞장서 "주주의 권익을 침해한다"며 도입을 반대했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항공업계로 범위를 좁히면 대한항공이 지난 2012년 주총을 통해 이사의 책임 제한 정관을 통과시켰다. 아시아나항공은 같은해 도입을 시도했으나 주주들의 반대 등으로 의안을 철회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상장사의 절반 이상이 해당 정관을 도입했다"며 "경영진들의 부담을 낮춰 신사업 등 미래 성장 동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재무제표 승인의 이사회 위임도 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안이다. 이 조항은 감사인 적정의견, 감사 전원 동의 등 일정 요건을 갖추면 이사회가 재무제표를 승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안이 통과되면 배당권한을 이사회가 갖게 된다. 회사 사정에 따라 배당금 규모를 축소할 수 있어 주주권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제주항공은 지난달 보통주 1주당 400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사외이사는 사실상 거수기 역할만 하기 때문에 이사회의 권한이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실제로 지난해 제주항공 사외이사 3인은 올라온 안건에 대해 100% 찬성표를 던졌다.
제주항공의 정관 변경안은 원안대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호지분이 전체 지분 가운데 3분의 2를 넘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은 AK홀딩스 등 관계사 지분 67.53%와 제주항공우리사주의 지분 5.79% 등 우호지분만 73%를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급성장하고 있는 제주항공이 신사업의 신속한 결정과 추진을 위해 정관을 변경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안전 이슈 등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진의 책임 경감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송주오 기자 (juoh8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