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줄며 신림동 방값 뚝..그나마 안 나가
[뉴스핌=정재윤 기자] 오전 8시, 그것도 성탄절의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열 가게는 많지 않다. 그런데 이곳은 조금 다르다. 가게들이 모두 문을 열었다. 인근 서점에 들어가 성탄절에도 영업을 하시냐고 묻자 “고시생들한테 쉬는 날이랄 게 있나요. 그러니 우리도 열어야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성탄절 아침인 25일 오전 신림동 ‘고시촌’을 찾았다. “이번 정류장은 대학동, 고시촌입니다.” 버스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곳은 행정구역명 대학동. 비공식명 ‘고시촌’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 “여기는 뭐, 숨만 쉬고 있는 거지 숨만”
79년부터 지금까지 신림동 고시촌에서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신충길(44년생) 씨는 말했다. “예전에는 우리 집에서 1년에 상법 책만 2000~3000권은 나갔어. 고시생들이 다 우리 집에서 요새 무슨 책이 나오나 하고 기웃거렸다니까. 그런데 이제 뭐, 옛날 얘기 된 것도 오래야."
8년 전 고시촌에 고시서적 전문 서점을 열었다는 A 씨는 “예전에는 거리가 다 새까맸어요. 사람이 많아서. 지금은 적막하죠. 동네가 조용해 진 지 3~4년은 됐어요”라고 전했다.
A 씨의 서점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열 장이요”하며 돈을 내밀었다. A 씨는 익숙하게 식권을 건넸다. 고시촌의 서점들은 인근 식당의 식권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식권을 사서 나가는 학생을 따라 나갔다. 고시촌에 거주한다는 고시생 B 씨는 “고시식당을 여러 군데 다녀봤는데, 여기가 제일 맛있어요”라며 한 식당으로 향했다.
한창 손님으로 북적거릴 시간인 낮 12시. 식당에서는 서 너 명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휴일이라 사람이 적은 편인가 묻자 B 씨는 “휴일 때문이라기보다는… 예전보다 동네에 사람이 줄었죠.”라고 답했다.
◆ “사시 폐지가 유예됐어도 나가는 사람 더 많아”
C 씨는 22년 째 고시서적 전문 서점을 경영하고 있다. “사시 존치를 기대하는 학생들이 없는 건 아닌데, 원래 준비하던 사람들이지 뭐. 사법시험 한 두 번 보면 7~8년이 훌쩍 가는데 공부하던 사람이 아니고서야 새로 시작은 못하지.”
“방 구하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더 많아요.”
25년 째 고시촌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윤무갑(48년생) 씨는 “요새는 동네에 사시생 보다는 9급 공무원 준비생들이 많아. 이 사람들은 동네에 살지 않고 본인 집에서 다니는 편이야. 그래서 방값이 엄청 내려갔는데 그나마도 안 나가”라고 전했다.
그가 말을 잇는 동안에도 원룸을 내놓는다는 세입자 한 명이 윤 씨의 부동산을 방문했다. 그는 중개료를 넉넉히 드릴 테니 방을 빨리 빼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다.
윤 씨는 “사시가 존치 되면 우리야 좋지. 사시 정원이 1000명이던 10년 전에는 이 동네 경기가 완전 호황이었는데. 그런데 그게 (존치가) 되겠어?”라고 말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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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재윤 기자> |
2015년 고시촌의 성탄절은 조용했다. 고시촌 골목골목 전봇대 마다 “변호사 시험 접수 취소를 위해 힘을 모으자”는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사시 폐지 유예에 반대하는 로스쿨 학생들의 전단지다.
한편에는 “사법시험 합격을 축하합니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12월의 매서운 바람에 전단지도, 플래카드도 모두 펄럭이고 있었다.
[뉴스핌 Newspim] 정재윤 기자 (jyju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