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폭락·평가절하·톈진폭발 등 국내외 신뢰 '와르르'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25일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동시에 인하하는 강수를 뒀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불안의 진원지인 금융시장에서는 오히려 더 강도 높은 부양책이 나와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저명한 경제 구루들은 중국 정부가 위기의 해답을 신뢰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연달아 터진 대형 악재로 그동안 쌓아온 대내외 신뢰가 모두 무너져내린 상황에서 강도 높은 부양조치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대는 꼴과 다르지 않다는 판단이다.
◆ 의문점만 가득한 경제지표
최근 사태에 앞서 시장은 국내총생산(GDP)를 비롯해 실업률 등 중국이 발표한 경제지표에 일관되게 물음표를 던져왔다.
그러던 가운데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989년 이후 26년여 만에 처음으로 목표치를 밑돌 것이란 경고등이 켜지고 중국 정부가 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통계조작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앞서 지난 2007년 위키리크스는 리커창 중국 총리의 중국 GDP 지표 불신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리 총리는 랴오닝성 서기를 지내던 당시 GDP 성장률 통계에 대해 인위적으로 믿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4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이 당국 목표치인 7%로 나온 것에 대해 경기둔화 우려를 완화하기 위한 조작이 있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씨티은행은 중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이 6%에도 못 미친다고 분석했으며 캐피탈이코노믹스와 미국 컨퍼런스보드는 각각 4.9%와 4%라는 수치를 제시한 바 있다.
전미경제연구소,상해재경대학,존스홉킨스대가 공동 조사한 중국의 실질 실업률 <출처=차이나-UHS> |
다만 중국의 통계조작 가능성을 둘러싼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는 상황이다.
홍콩과학기술대학의 카스텐 홀츠 경제학 교수는 "불확실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매번 경제조사를 실시하고 벤치마크를 수정하는 등 여느 선진국과 조사 과정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니콜라스 라디 중국 스페셜리스트도 "정부가 통계정보의 중앙집중화를 추구하면서 GDP 지표가 신뢰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최근 수년간 중국 통계담당자들이 경기가 호황일 때 숫자를 낮추고 불황일 때 통계치를 올리는 방식을 취한 데 따라 성장률이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해왔다고 비판했다.
중국 총리직을 맡고 있는 리커창 역시 과거에 "GDP 지표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따라서 신뢰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을 정도로, 중국 정부가 거시지표를 일부 스무딩(smoothing) 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일 정도다. 하지만 외국경제전문가들도 중국이 완전히 지표를 조작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 중국의 문제, 모두의 문제
윌리엄 페섹 <출쳐=블룸버그> |
동아시아 전문가인 윌리엄 페섹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위안화 평가절하 조치를 언급하며 중국 당국자들이 존 코널리 전 미국 재무장관의 행보를 따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닉슨 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존 코널리는 달러화발 통화전쟁을 우려한 각국 재무관료들에게 "달러는 우리의 통화지만 달러 가치 하락은 당신들의 문제"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페섹은 아시아 지역의 금융과 외교, 군사 측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고자 했던 중국이 주변국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해왔지만 한순간에 신뢰를 무너뜨린 행위를 저질렀다고 지적한다.
한 마디 언급도 없던 갑작스런 환율조치에 뒷통수를 맞은 주변국이 중국에 대한 신뢰를 거두기 시작했고 중국의 해명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과 같았다는 셈이다. 이어 25일에는 당초 입장과 달리 8일 만에 환율 평가절하를 재개하며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는 행보까지 보이고 있다.
페섹은 "이를 비롯해 남중국해 갈등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톈진항 폭발 등에서 중국은 역내 주요국이라는 입지에도 불구하고 책임감 없이 권력에서 오는 이익만 취하는 골목대장처럼 행동해왔다"며 "돈으로 주변국의 신뢰와 소프트파워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 중국식 모델, 수명 다 했다
8월 위기를 계기로 공산당 중심의 강력한 지배 권력을 중심으로 한 중국식 모델의 수명이 끝났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나오고 있다.
조지 매그너스 옥스퍼드대 중국센터 연구원 <출처=조지매그너스닷컴> |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중국센터의 조지 매그너스 연구원은 "대단원의 막이 내리고 있다"며 "공산당 중심의 지배권력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금융시장 자유화와 경제 구조개혁, 7% 성장률은 상호 양립할 수 없는 목표"라고 평가했다.
국유기업과 지방정부의 신용이 투자를 견인해 수출을 진작했지만 글로벌 수요가 둔화되고 중국이 소비 중심의 경제로 탈바꿈하려는 과정에서 부채와 과잉생산, 불평등과 같은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강력한 반부패 정책으로 유례없는 권력의 집중화를 이뤄온 시진핑 정부의 행보도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주식시장이 폭락한 이후 증시 견인차와 단속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설픈 행보로 인해 시장의 신뢰를 잃고 불안만 키운 까닭이다.
매그너스 연구원은 "권력 집중은 구조개혁을 진행하는 데 있어 양날의 검"이라며 "경제가 과거와 같이 비현실적 수준으로 확장되기 어렵고 중국은 이제 영구적인 저성장 시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기 이후 당국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던 총수요 부족이란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신용을 기반으로 한 투자열풍과 수출중심 경제를 고수한 것도 문제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마틴 울프 칼럼니스트는 "최근의 사태가 불거진 것은 당국이 3가지 과제를 확실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금융위기를 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금융과잉 청산 ▲ 민간소비 중심 경제로의 전환 ▲ 총수요 성장세의 꾸준한 유지의 세 가지가 골칫거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심각한 것은 지난 7년간 중국 정부의 처방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라며 "향후 중국이 꺼낼 수 있는 카드인 위안화의 추가 평가절하와 초저금리, 양적완화는 불안정한 선택지로 현실화 될 경우 세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스핌 Newspim] 배효진 기자 (termanter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