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을 위한 창과 방패의 싸움…한국에 맞도록 최적화 필요 지적
[뉴스핌=김기락 기자] 삼성과 엘리엇간 싸움을 계기로 경영권 방어 제도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대표적인 것이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거론되는 차등의결권·포이즌 필(Poison Pill)·황금주 등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서와 국내 기업에 맞는 ‘현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경영권 방어 수단은 크게 두 형태다. 첫째 경영권을 방어하는 회사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방어회사의 경영진이 소유한 지분보다 더 많은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배권을 높이는 것이다. 차등의결권과 황금주가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는 공격하는 회사의 지배권을 약화시키는 방식이다. 지배권을 약하게 만들어 경영권을 방어하는 방법인데, 상대의 힘을 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포이즌 필이다. 포이즌 필은 기존 주주에게 신주 혹은 자기주식을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적대적 M&A(인수합병), 헤지펀드의 공격이 있을 경우 기존 주주들은 적은 부담으로 보유지분을 늘려 대항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미국, 일본 등을 더불어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 도입됐다. 이 때문에 경영권 방어 대책의 골자는 지배권에 대한 ‘힘’의 논리를 누가, 어떻게 취하느냐로 모아진다.
황금주는 영국이 국가 기간산업을 민영화하면서 고안한 방법으로, 단 1주의 주식만 보유해도 주주총회 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유럽연합(EU) 재판소는 2002년부터 황금주 폐지를 권고해왔다. 영국에서 황금주는 모두 소각됐다.
◆ 경영권 방어 장치 필요…부작용도 감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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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방어 대책은 경영권을 위한 창과 방패의 싸움으로 비유된다. 한국에 맞도록 제도의 최적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 홍종현 미술기자> |
차등의결권은 대주주와 일반주주에게 주식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의결권을 부여한다. ‘1주=1의결권’이란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주주에 의결권을 많이 부여할 수 있는 만큼, 안정적인 경영권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국가는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영국, 스웨덴, 싱가포르 등이다. 가까운 일본도 차등의결권을 제도화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차등의결권을 기존 상장사에는 인정하지 않고, 신규 상장할 때만 도입하도록 했다.
구글의 경우 나스닥 상장 시 창업자들에게 B클래스 주식을, 일반 투자자에게 A클래스 주식을 발행했는데, B클래스 주식에는 1주당 10개의 의결권을 주고, A클래스 주식은 1주당 1개 의결권을 갖도록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 일각에서는 이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해왔다. 재벌의 세습을 부추기는 등 자칫 일반주주에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금보다 더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로 굳어질 경우, 한국 경제 전반에 걸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대선 LG경영개발원 경제연구원은 “공격과 방어의 균형 차원에서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을 생각할 수 있다”면서도 “과도한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에 대한 부작용도 감안해야 한다”고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다.
안 연구원은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을 전제로 대기업 지배주주를 통해 배당 증가 등 주주중시 경영과 소액주주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사회적 논의부터 시작해야…한국식 제도 모색
전문가들은 경영권 방어 대책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순서라고 입을 모은다. 제도를 ‘한국식’으로 최적화하는 데 대주주 및 일반주주 외에도 경제 구조 등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자는 것이다. 손질 없는 제도 도입 시 한국과 우리 기업에 도움은 커녕, 반정서 여론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차등의결권이 삼성과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실제 이 제도를 도입한 구글, 페이스북 등은 IT기반의 벤처기업이다. 국내 도입하더라도 ‘한국식’ 제도가 아니면 기업이든, 사회든 공정한 실효성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차등의결권 제도가 국내 도입될 경우, 대주주가 보유한 회사들이 회사 돈으로 주식을 사고, 그 주식으로 대주주의 지배권을 확립 시, 일반주주의 자금이 쉽게 잠식당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이 ‘승계’하는 특성상,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이 경제 전반에 걸쳐 악영향이 있을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이외에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인수합병 시도 시 특정비율 이상 지분을 사도록 하는 의무공개매수제도, 차등의결권과 유사한 ‘테뉴어 보팅(tenure voting)’ 등이 검토되고 있다. 테뉴어 보팅은 주식 보유기간에 따라 의결권을 늘리는 방식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지배구조의 취약성에 대한 개선과 보다 주주친화적인 경영의사결정 문화가 정착된 이후에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재계에서도 황 실장 의견에 무게를 실었다.
재계 A 관계자는 “경영권 방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B 관계자도 “도입 논의를 한 뒤, 한국 사회와 국내 대기업에 적합한 제도를 모색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주요 대기업의 최대주주로 자리잡은 국민연금의 역할론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단기 차익을 노리고 국내 들어오는 해외 투기 자본보다 한국 경제의 기둥인 대기업이 흔들리지 않도록 방어해야 한다는 논리다.
정진호 경쟁력평가원 원장은 “국민연금 입장에서 봤을 때 좋은 기업에 투자해 운용자금을 크게 불려야 하지만 국민의 돈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국가 이익을 위해 국내 기업에 우호적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필요에 따라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백기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경영권 방어 법안을 발의하는 등 제도 개선의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다. 정갑윤 새누리당(국회 부의장)읜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장치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다. 다만, 이 상법 개정안이 대기업 총수 일가의 지배권을 강화한다는 지적에 따라 국회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뉴스핌 Newspim] 김기락 기자 (people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