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환의 문화의 향기<8> 동서양 문명의 충돌
흔히들 서양은 물질문명의 나라, 동양은 정신문화의 나라라고 말한다. 동양과 서양은 아주 오래전 인류가 출현할 때부터 각자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내용을 들여다보면 양자가 모두 농경문화라는 점에서 유사한 점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그 문화를 승계·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길을 걸어감으로써 오늘날 많은 차이점이 나타나게 되었다.
서양은 유럽대륙에서 그리스· 로마문화를 승계하고, 이에 기독교문화를 배합시켜 문화예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반면, 동양은 고대중국과 인도문화를 중심으로 불교와 유교문화를 배합시켜 문화예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런데 서양문화는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실질적이고 외형적인 것을 중요시하여 건축과 미술, 음악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에 오늘날 찬란한 인류 문화유산의 대부분은 유럽에 몰려있다. 실질과 외형을 중시하는 문화는 그들의 일반 생활양식과 관습에도 영향을 미쳐 편리성과 외관상의 멋을 중시하였다.
반면, 동양은 철학과 도덕, 훈육 등 인간의 내면세계를 중시한 결과 외형적인 문화발전은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쳐졌다. 불교미술 외에는 뚜렷이 내세울 만한 문화예술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음악과 건축분야는 더 불모지대이다. 여기에 경제력도 낙후되어 서양에 뒤쳐졌다. 그래서 문화를 보전하고 발전시켜나갈 토양이 갖추어져 있지를 못했다. 결국 동양은 20세기 들어 서양에게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서양은 정치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동양세계를 지배하려 들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문화재가 유실되거나 서양세계에 수탈되었다. 오늘날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에 동양의 수많은 문화재가 진열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식이나 생활양식 측면에서도 동양은 서양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서양이 르네상스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자연스레 드러낸데 비해 동양은 여전히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유교사상에 물들어 있었다. 그 결과 생활양식이 편리성보다는 예의와 도리를 중시하는 쪽으로 고착되어 있었다. 이는 일상생활과 비즈니스를 수행해 나가는데 힘들고 불편했다.
그래서 동양의 나라들은 정치사회적으로 서양의 지배를 받던 시절, 주거와 복식 등 생활문화도 대부분 서양의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따르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제 아파트생활과 양복차림은 마치 오래전부터 우리의 생활관습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서양의 그것이 더 편했을 뿐만 아니라 외관상 보기에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서양의 것은 좀 더 우아하고 세련된 것이라는 선입견마저 작용하였다. 또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 할리우드 영화는 이런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켜 나갔다.
그런데 또다시 세상이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감을 가지게 되면서 이제 점차 정신적 내면세계의 안정을 찾아 나서고 있다. 특히 치열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정신적인 힐링(healing)을 필요로 하고 있다. 나아가 동양은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하고, 서양은 동양의 도와 예 의식을 체험하려 할뿐만 아니라 이를 적극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동양의 정신문화를 서양의 물질문명과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철환 하나금융연구소 초빙연구위원·단국대 경제과 겸임교수 ('아름다운 중년, 중년예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