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무명 배우 성근(설경구)은 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의 대역 오디션에 합격한다. 생애 첫 주인공의 역할에 들뜬 그는 말투부터 손짓 하나까지 필사적으로 몰입한다. 결국,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되지만, 그는 김일성 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성근은 여전히 자신을 김일성이라 믿고, 아들 태식(박해일)은 그런 아버지 때문에 미치기 직전이다. 그러나 빚 청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다시 옛집으로 모셔온 태식은 그렇게 독재자 수령동지(?)와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의 독재자’는 개봉 전부터 예비 관객들의 흥미를 끌었다. 김일성, 남북정상회담을 소재로 다뤘고, 연극부터 내공을 쌓아온 연기파 배우 설경구와 박해일이 호흡을 맞춘 것.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건들지 않을까, 제아무리 연기를 잘한다 한들 실제 아홉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두 배우가 부자(父子)호흡을 얼마나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영화는 특정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이야기하고자 하지 않았다. 역사적 사건은 단순 배경일 뿐 이야기는 김일성 대역을 한 한 무명 배우의 감동적인 드라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소재와 비교했을 때 풀어가는 과정이 조금 단조롭다 보니 중반부부터 조금 늘어지는 감이 있어 아쉽다.
그러나 영화는 배우들의 폭발적인 연기 시너지라는 강점을 안고 있다. 우려와 달리 설경구와 박해일은 실제 나이 차이를 의심케 하는 섬세한 연기로 완벽한 부자 호흡을 펼친다. 물론 완성도가 더욱 높아진 특수 분장과 타고난 박해일의 동안(?) 등 외적인 효과 덕도 봤지만, 그 사이를 촘촘히 메운 것은 두 배우의 연기였다. 먼저 영화 중반부 등장하는 박해일은 특유의 능청 연기부터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지닌 아들의 뜨거운 감정을 분출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반면 극 초반부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설경구의 연기는 단연 으뜸이다. 무명배우의 설움부터 김일성으로 살아가는 노년까지, 그는 무능력한 아버지와 무명 배우의 삶을 오가는 성근의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펼쳐낸다. 특히 최고의 신으로 꼽을 수 있는 성근의 마지막 무대는 영화의 백미다. 단 한 명의 관객, 아들을 위해 20년 전 끝내지 못했던 연극을 시작하는 아버지, 그의 마지막 무대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미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 있던 배우인지라 새로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설경구는 그렇게 대중의 기대치를 또 한 번 넘어선다. 그의 연기 내공에 새삼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다.
더욱이 여기에 윤제문, 이병준, 류혜영 등이 가세, 각자의 위치에서 제 몫을 해내며 극의 부피를 더한다. 설령 영화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어떤 단점을 안고 있다고 한들, 128분 동안 배우들의 열연에 흠뻑 빠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모두 보상받은 기분이다.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