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불미스러운 오해에 휘말려, 지방 소도시 문화센터 문학 강사로 내려온 교수 학규(정우성)는 퇴락한 놀이공원의 매표소 직원 덕이(이솜)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학규는 복직이 되자마자 서울로 다시 올라가고 덕이는 한순간에 버림받게 된다.
8년 후 학규는 작가로 명성을 얻지만, 딸 청이(박소영)는 엄마의 자살이 아버지 탓이라 여기며 반항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눈이 멀어져가는 병까지 걸린다.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 그때, 학규의 앞집으로 세정(이솜)이 이사를 온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그는 세정이 8년 전 덕이라는 걸 모른 채 그녀에게 의지한다. 그렇게 위태로운 관계의 주도권을 쥔 덕이는 학규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기 시작한다.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고전소설 심청전 이야기다. 영화 ‘마담 뺑덕’은 바로 이 심청전을 욕망의 텍스트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그것도 이야기의 저 뒷면, 심청이의 효심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흐릿하게 그려졌던 심학규와 뺑덕어멈의 이야기를 한 가운데로 불러냈다. 여기에 사랑과 욕망, 집착이라는 적나라한 인간의 감정을 덧입히겠노라 예고했다.
특히 심봉사가 처음부터 맹인이 아니라는 설정, 뺑덕어멈이 나쁜 계모와 악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 고전을 비튼 부분들이 구체적으로 알려지며 예비 관객의 흥미를 자극했다. 하지만 학규와 청이의 첫 만남과 이들의 순수한 사랑이 담긴 전반부를 제외하고는 영화에는 픽션에 가까운 장면들이 거의 없다.
게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고전 심청전이 그대로 수면 위로 올라온 느낌이다. 유명 고전 소설의 재해석보다 단순 패러디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되레 사랑하고 배신하고 복수하는 일련의 상황은 브라운관에서 자주 봤던, 뻔한 막장극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의 가장 약점은 (연기를 떠나서) 캐릭터 자체를 공감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사랑에 눈멀어 너무나도 어리석게 자신의 소중한 것을 모두 잃고 마는 덕이의 모습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반대로 복수에 불타오를 때는 어째 가엽고 힘이 없어 보인다. 반면 학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시종일관 ‘강철 멘탈’(?)을 자랑, 보는 이를 당황하게 한다. 더욱이 극 후반부 학규의 딸 청이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갈 길을 잃는다.
캐릭터들이 잘살아나지 못했으니 몰입도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물론 주연 배우 정우성과 신예 이솜의 베드신은 예고했던 만큼 수위가 높고, 충분히 구미를 당길만하다. 하지만 캐릭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눈앞에 벌어지는 장면이 파격적이라고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머리로는 분명 필요한 신임을 알겠는데 도무지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시력을 잃어가는 정우성의 연기나 순수함과 팜므파탈을 오가는 이솜의 연기는 따로 떼어내 볼 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영화가 아름답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이는 분명한 장점이다. 스크린 너머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색감, 정우성과 이솜이란 배우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 적재적소에 배치된 음악이 어우러지며 영화는 저만의 색깔을 가진다. 때문에 내용과 관계없이 영화는 시종일관 우아한 느낌이다. 수위 높은 베드신이 생각보다 가벼워 보이지 않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10월2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