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건강 문제로 산에서 요양했던 어학원 강사 권(서영화)은 몸이 회복된 후 서울로 다시 돌아온다. 그는 전에 일하던 어학원에 들르고 그곳에서 두툼한 편지봉투 하나를 건네받는다. 편지의 발송인은 2년 전 자신에게 프러포즈한 일본인 강사 모리(카세 료). 권의 거절에 일본으로 돌아갔던 모리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자신을 찾고 있었다. 권은 편지를 읽으며 계단을 내려오다 머리가 핑 돌아 그만 주저앉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손에 든 편지를 놓친다. 흩어진 편지들을 다시 거둬들였지만, 편지에는 날짜가 없다.
영화는 권이 편지를 다시 잡아든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줄거리를 더이상 쓰지 않는 것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한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의 언덕’은 시간의 순서를 따르지 않은 채 흩어져 진행된다. 뒤죽박죽된 편지 탓에 모리가 북촌에 머무르는 동안 벌어진 일들이 뒤엉켜있는 것이다.
물론 이 독특한 전개 방식은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미덕이다. 순서 없이 펼쳐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한 걸음 앞으로 갔다가 다시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기분이 종종 든다. 현실-꿈, 과거-현재-미래의 구분도 어느 때부터인가 희미해진다. 물론 이 독특한 형식은 복잡함보다는 신선함, 그리고 흥미로움에 가깝다. 그리고 관객은 뒤엉킨 전개를 통해 시간이란 것이 과거-현재-미래로 명확하게 나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사랑에 있어서 시간의 뒤엉킴 쯤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느낀다.
이번 작품의 또 다른 특징 하나는 일본 배우 카세 료가 모리를 연기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조금은 능청스러운 톤으로 영어 대사를 소화한다. 알 듯 말 듯한 섬세한 표정 연기도 일품이다. 그간 홍 감독의 팬을 자처했던 카세 료는 기대 이상으로 홍상수식 영화에 잘 어울린다. 그리고 여기에 문소리, 서영화, 김의성, 윤여정, 기주봉, 이민우, 정은채 등 그간 홍 감독의 프레임 속에 등장했던 낯익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 영화에 힘을 더한다.
배우들의 뱉는 대사는 여전히 ‘홍상수’스럽다. 가끔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의아하기도 하다. 어떨 때는 날카롭고 건조하다가도 때로는 편안하고 따뜻하다. 물론 솔직하고 그만큼 아름답다. 때문에 관객은 등장인물들의 대사(물론 절반 이상이 영어일지라도)만으로 그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받는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자면 풀어내지 못한(혹은 풀어내지 않은) 한 장의 편지, 그리고 마지막 시퀀스다. 극 초반 권이 편지를 줍는 과정에서 그는 미처 한 장을 줍지 못하는데 (아마도 카세 료와 광현 역의 이민우가 다투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이 빈틈이 주는 묘한 느낌이 좋다.
반면 “권과 일본에 가서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았다”는 모리의 대사와 함께 권과 모리가 함께 언덕을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은 이상하리만큼 희망적이다.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스크린 너머 희망 가득한 미지로 떠나는 기분이다. 4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사진=영화제작 전원사/영화사 조제]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