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정책자 은행권 장기저리 대출로 대체 의사 내비쳐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디플레이션 리스크 퇴치에 팔을 걷어붙인 유럽중앙은행(ECB)이 시장의 기대와 달리 미국식 양적완화(QE) 계획에서 일보 후퇴하는 움직임을 보여 주목된다.
마리오 드라기 ECB총재 |
9일(현지시각) CNBC 에 따르면 ECB는 직접적인 자산 매입이 아니라 은행권에 대한 장기저리 대출을 통해 시장금리를 떨어뜨리는 방안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미국식 자산 매입을 은행권 유동성 공급으로 대체하겠다는 얘기다. 자산을 사들이는 데 필요한 제도적 걸림돌이 해소되지 않은 데다 ABS 시장의 여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ECB는 지난달 4년 만기 저리 대출을 은행권에 공급할 계획을 발표했다. 정책자들은 이를 통해 금융시스템과 실물경기의 신용 여건을 개선, 시장금리를 우회적으로 떨어뜨리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ECB의 페르트 프레이트 정책 이사는 “은행권에 공급할 장기 대출은 단순한 대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며 “이는 유동성 투입에 해당하며, 은행권의 자금 조달을 대체할 수 있는 의도가 포함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기저리 대출을 받은 은행권이 가계와 기업에 대출해 실물경기 회복을 도모할 수 있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ECB가 아닌 시중은행이 ABS를 포함한 자산 매입에 나설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더 나아가 은행권이 자산 매입에 실제로 나설 경우 시장금리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다.
이 같은 계획이 맞아떨어질 경우 ECB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같이 대차대조표를 대폭 불리지 않고 시장금리를 낮추는 한편 유동성 경색을 해소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브느와 꾀레 ECB 이사 역시 “지난 6월 발표한 장기저리대출 계획은 매우 결단력 있는 정책 카드였다”며 “이를 통해 기대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경우 보다 적극적인 부양책 카드를 꺼내들 수 있지만 효과가 없을 것으로 판단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ECB의 계획에 따르면 은행권은 오는 9월과 12월 최대 4000억유로(5450억달러)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은행권은 초저금리에 조달한 자금을 대출 실적에 따라 2018년까지 유지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시장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은행권이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ECB의 역할을 은행권이 떠안는 시나리오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헤지펀드 자문사인 SGH 매크로 어드바이저스의 사산 가라마니 최고경영자는 “ECB 정책자들의 얘기대로라면 신용 팽창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파장을 은행권이 떠안아야 하는 셈”이라며 “은행권이 적극적인 대출 확대에 나서기에는 여건이 지극히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기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