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철곤 회장 '그림자 경영'에 허인철 부회장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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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이연춘 기자] '비상경영 체제'에 나선 오리온그룹과 CJ그룹의 '다른듯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두 오너와 두 그룹이 처한 상황을 동일선상에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단순한 총수가 아니라 현장 경영의 야전 사령관으로 통했던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 특히 오리온이 '부부경영'을 앞세웠다면 CJ는 '남매경영'으로 투톱 체제를 펼쳤지만 총수 부재에 2인자 세우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
오리온의 'CJ 따라하기'가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총수 경영공백에 대한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넘버2'의 카드를 꺼내 들고 위기에 맞서고 있는 것.
11일 재계에 따르면 오리온은 '담철곤·이화경'과 CJ는 '이재현·이미경'의 부부·남매 경영으로 통한다. 담철곤 회장과 이재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그룹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면 이화경 부회장 이미경 부회장은 각각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등 그룹의 핵심 사업부분을 책임지며 쌍두마차 경영 체제를 고집했다.
이런 가운데 CJ의 이 회장의 1600억 원대 횡령과 배임, 조세포탈로 오너 리스크로 오리온의 담 회장은 회삿돈을 횡령해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난 상태다. CJ그룹의 지난해 10월 수시·정기임원 인사 등 두차례의 인사는 비상경영을 헤쳐나갈 이 회장의 의중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 회장의 부재는 그룹 생명력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절박감을 보여줬다.
지난해 7월 구속된 이 회장을 대신해 CJ그룹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총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이채욱 대한통운 대표이사 부회장을 그룹의 지주회사인 CJ주식회사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외부 인사가 지주사 대표를 맡은 것은 적잖이 이례적이었다. 이 회장의 CJ 출신 인사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엿보게하는 대목이다.
CJ그룹은 지난해 목표치 30조원에 못미치는 28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1조1000억원으로 목표치(1조6000억원)의 약 70%에 불과했다. 이 같은 부진은 전반적인 시장경제 위축을 감안하더라도 이 회장의 공백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총수의 결단이 있어야 가능한 대규모 투자와 M&A(인수·합병)가 보류되거나 표류하는 등 난기류가 조성된 셈이다.
여기에 이 회장은 앞서 3월 CJ E&M과 CJ오쇼핑, CJ CGV 등 3개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난다. 그의 계열사 등이사직 사퇴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등기이사의 개별 보수 공개 조치와 재판과 관련한 여론을 감안 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오리온 역시 총수 부재에 따른 후유증이 예상보다 커지고 있다.
오리온의 부부경영은 지난해 말 책임경영 강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회사 등기임원직을 동반 사임했다.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 강화 차원에서 대표이사직에서 손을 뗀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담 회장의 부인 이화경 부회장도 같은 이유로 함께 등기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오리온의 지난해 성적표는 초락하기만 하다. 매출 부진에 따른 실적 악화때문이다. 오리온의 지난해 매출액은 7921억원, 영업이익은 475억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3.5%, 23.3% 곤두박질쳤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주요 성장 동력이었던 중국법인의 매출 하락도 성장에 발목이 잡혔다.
오리온 안팎에서는 전문경영인이 있다고 해도 대규모 투자 등의 최종결정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총수부재에 따른 결과로 분석했다. 결국 총수 부재라는 같은 과제를 안고 있는 'CJ그룹 따라하기'에 나서며 안감힘을 쓰고 있는 분위기다. 담 회장은 허인철 전 이마트 대표를 오리온 부회장으로 영입하며 실적 만회하기 위해 칼을 꺼내 들었다.
허 부회장은 오는 14일부터 출근해 그룹 현황을 파악하고 본격적인 업무에 착수할 예정이다. 총수 부재의 책임 경영과 최근 외부 인력에 따른 결속력을 다질 오리온 2인자로 낙점을 받았다는 평가다.
오리온은 지난 2012년부터 주요 임원진을 교체 해 왔다. 부사장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마케팅 총괄 부사장을 교체한 데 이어, 그룹 내 신성장 브랜드인 닥터유 총괄 부사장도 교체했다. 그 자리에는 제일모직과 제일기획 출신 인재들을 뽑아 채웠다. 또 인사총무와 재무를 담당하던 상무급 임원도 현재는 재무업무만 담당하고 있다. 신임 임원이 인사총무를 담당하는 등 그룹 내 임원진 변동도 많아졌다.
허 부회장은 담 회장의 '러브콜'을 직접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신세계그룹의 재무통으로 활동했던 만큼 오리온의 M&A을 주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제과와 스포츠토토가 사업의 양대 축이었지만 스포츠토토 사업을 떼어내다보니 신성장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때문에 국내외 M&A를 통해 신사업을 추진하고자 허 부회장을 영입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과업계에서 롯데제과의 경우 글로벌 M&A를 통해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는데 오리온 역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M&A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허 부회장 영입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한편 위기에 처했을 때 변화와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CJ와 오리온 총수의 결단이 그룹 2인자 인사에 녹아 있다. 다만 앞으로 두 그룹은 신구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뉴스핌 Newspim] 이연춘 기자 (ly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