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고유업무 자진반납…'뜨거운 감자' 기피?
▲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
공무원들은 생리적으로 조직 늘리기에 몰두한다. 이미 1957년에 영국의 행정학자 파킨슨이 이른바 '파킨슨의 법칙'을 통해 증명했다. 그는 "공무원의 수(數)는 해야 할 일의 경중(輕重), 때로는 일의 유무와 관계없이 상급공무원으로 출세하기 위해 부하의 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일정한 비율로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새 정권이 출범하기 전 인수위원회에서는 부처간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과 혼선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는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밥그릇 싸움'으로 지적되곤 했다.
이런 풍토에서 자신의 고유업무를 자진해서 이관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 안전·연비관리 업무 타부처 이관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이후 부실한 정부 대응을 반성하며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안전처' 신설을 발표했다.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를 어떻게 구성할 지 논의가 시작되자 산업부는 전기·가스 안전관리 업무를 국가안전처로 넘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기자들과 만나 "전기와 가스 등의 안전관리 업무는 한곳에서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신설되는 국가안전처가 맡는 데 찬성이고, 오늘 국무회의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논의가 됐다"고 전했다.
안전관리 업무 이관이 확정되면 실무를 맡고 있는 전기안전공사와 가스안전공사 등 관련 공기업들도 함께 이관될 가능성이 크다.
안전관리 업무는 그렇다쳐도 자동차 연비관리 업무 이관은 의미가 좀 다르다. '국토부의 욕심(?)에 산업부가 너무 저자세로 양보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부처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자동차 리콜 권한을 갖고 있는 국토부가 연비관리 업무까지 가져가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슈화시키면서 언론플레이를 해 왔다"면서 "하지만 국토부의 전문성이나 신뢰도 면에서 업무를 넘겨받기에는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 연비관리 업무는 산업부가 10년째 진행해 온 반면, 국토부는 지난해 처음 시작했다. 때문에 자동차업계에서도 아직 신뢰도가 떨어지고 지난해 조사결과에 반발하는 빌미를 주기도 했다.
이에 국토부는 업무 성격상 국토부가 맡는 게 당연하고, 전문성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동차 관리 업무는 국토부의 고유업무로서 자동차의 성능이나 연비관리 업무는 국토부가 맡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연비관리에 대한 전문성과 조사능력이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 골치아픈 규제업무 과감히 '양보'…진흥정책에 주력
산업부가 안전 및 연비관리 업무를 타부처에 과감히 양보한 데는 진흥 정책에 주력하겠다는 윤 장관의 의중이 담겨 있다.
윤 장관은 최근 "진흥과 규제 업무는 분명히 분리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부처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잘 작동되도록 해서 건강한 관계를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는 일도 산적한데, 규제 업무를 놓고 타부처와 실랑이할 겨를이 없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산업부의 '양보 정책'에는 최근 밝혀진 '엉터리 가스검사'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가스검사기관들의 안전불감증과 부실검사가 만연했던 것에 대해 윤 장관은 크게 질책하고 철저한 재발방지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가에서는 '골치 아픈' 규제 업무를 타부처에 이관하는 산업부의 대응에 대해 부러워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이 '안전'을 중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권한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자칫 해경이나 안전행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 장관의 양보정책이 부처간 '밥그릇 싸움'에 대한 모범사례로 인식될 지, 아니면 '뜨거운 감자'를 뱉어버린 충격요법으로 남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스핌 Newspim] 최영수 기자 (drea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