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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속살] 필리핀 쌀협상 실패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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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말 쌀 관세화 유예 종료 앞두고 우려 커져

[뉴스핌=홍승훈 기자] 최근 필리핀 앞바다엔 수입쌀이 실려있는 200척의 컨테이너선이 떠 있다. 필리핀 관세청이 이를 밀수입으로 판단해 입항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쌀 관세화 종료에 따라 지난 2012년부터 끌어온 필리핀 정부의 추가연장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이 협상을 우리 정부 관계자들도 주의깊게 보고있다. 우리 역시 오는 12월로 쌀 관세화 유예가 종료되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오전 10시(한국시각 오후 5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세계무역기구) 상품무역이사회에서 필리핀이 요청한 쌀 관세화 의무의 5년간 추가 면제(웨이버) 안건이 또다시 부결됐다. 

부결 결정을 전해들은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상당한 대가를 제시했음에도 필리핀의 쌀 관세화 유예를 위한 웨이버(waiver, 추가면제)가 부결된 것은 올해 말 쌀 관세화 유예 종료를 앞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는 게 우리 정부가 내놓은 공식 입장이다.

기존 물량보다 2.3배 늘린 쌀 의무수입물량(MMA), 대부분 나라들에 대한 국별 쿼터제 부여 등 나름대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회원국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는 곧 우리나라의 쌀 관세화 유예 연장 가능성도 사실상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체념의 간접 표현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물론 정부(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등)는 올해말 쌀 관세화 유예 종료를 앞두고 공식적으로는 정부 입장을 정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한다. 여러 농민단체의 입장과 국익 등을 고려해 오는 6월말까지 최종 입장을 정하겠다는 게 현 스탠스다. 이후 국회를 거쳐 9월말 WTO에 우리측 입장을 전달하겠다는 스케줄만 내놨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쌀 관세화, 즉 쌀 시장 개방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상황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국회 통상특위에 참석한 이동필 농림부 장관은 쌀 관세화관련된 질의에 "우리에게 유리하면서도 WTO에서 검증될 수 있는 자료(관세율 정하는 근거자료)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쌀 시장 개방을 전제로 대응전략을 짜고 있다는 얘기다. 관계부처 관련 공무원들 역시 쌀 관세화 외에는 특별한 방안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번 필리핀의 웨이버 부결에 대해서도 농림부 관계자는 "선택의 폭이 좁고 웨이버 대가가 상당하다는 게 확인됐다"며 결국 추가 연장요구가 어려울 것임을 암시했다.

정부측에 따르면 전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필리핀 웨이버 안건은 단 5분도 안돼 부결됐다. 9개국 중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필리핀의 제시조건을 반대하며 다른 안건으로 넘어갔다는 전언이다.

이는 미국과 캐나다, 호주, 태국 등이 쌀 이외 관심품목 관세 인하 등 여타 다른 요구사항을 해오며 필리핀측과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예컨대 기존 회원국들이 필리핀에 쌀 이외에 육류 등 여러 상품분야에 대해서도 물량 확대 및 완화를 과도하게 요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쌀 관세화 5년 유예를 요구하는 대신 35만톤인 의무수입물량을 80만5000톤으로 늘리고, 모든 희망국가에 국별 쿼터를 과거 3개국 13만8000톤에서 7개국 75만5000톤으로 확대하겠다는 필리핀 정부의 조건은 꽤 높은 수준으로 보여진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별 쿼터를 보장해주면 자칫 상대국들이 담합해서 가격을 높일 수 있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부결된 것을 보면 웨이버 협상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고 전해왔다.

필리핀은 또 향후 수입쌀에 대한 관세율도 40%에서 35%로 인하하는 조건도 함께 제시했지만 태국은 이를 30%까지 더 내리라는 요구를 했다는 전언도 있다. 한마디로 현재 필리핀이 WTO 규정을 위반하고 있는 상황을 이용해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받아내겠다는 기존 회원국들의 속내가 드러났다.

웨이버 협상이 3년째 이어지는 과정에서 상대국들의 요구수준도 갈수록 높아진다. 농림부 한 관계자는 "이번이 6차협상인데 사실 1~2차 협상때만해도 이정도 요구는 아니었다"며 "국가별 쿼터만 해도 초기엔 지금 요구수준의 절반 밖에 안됐었다"고 덧붙였다.

종합해볼때 결국 이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쌀 관세화를 통한 시장개방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정부측의 입장이다. 정부에선 300~500% 수준의 관세율을 통해 국산 쌀시장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쌀 관세화를 반대하는 농민단체들 역시 이같은 현실을 어느정도는 공감하는 모습이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이번 필리핀의 부결 결과가 우리에게도 불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근거라는 점에선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정부에선 이를 통해 미리 어렵다고 예단해서 결론짓지 말고 이번 협상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해 보다 치밀하고 차분하게 대응전략을 짜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통상전쟁이 벌어지는 국제사회에선 논리가 정연해야 회원국들을 설득할 수 있다"며 "이미 1차에 한해 관세화 유예가 가능하다는 WTO 규정상 2004년 한차례 유예시 재연장 문구를 집어넣지 않은 이상 더 이상 유예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국가별 쌀관세화 유예현황 비교 =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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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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