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저 앤 로사'의 주인공 엘르 패닝(오른쪽)과 앨리스 잉글러트 [사진=영화 '진저 앤 로사' 스틸] |
2012년 샐리 포터 감독이 선을 보인 영화 ‘진저 앤 로사’는 팽팽한 전운이 감돌던 1960년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자전적 작품이다.
‘진저 앤 로사’는 1962년 10월22일 소련이 쿠바에 핵탄도미사일을 배치하려 시도하면서 벌어진 쿠바미사일위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다. 감독이 실제 체험한 역사적 사건을 영화의 모티브로 삼은 만큼 섬세한 고증을 거쳐 완성된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 배경이 인상적이다.
감독은 ‘진저 앤 로사’를 통해 전쟁의 공포와 재즈의 낭만이 공존하는 도시 런던의 아이러니를 그렸다. 한날한시 태어난 소녀 진저(엘르 패닝)와 로사(앨리스 잉글러트)를 통해서는 유년시절 겪은 전쟁의 공포와 인간적 위안, 그리고 뒤틀어져버린 우정을 담으려 했다.
실제로 쿠바미사일위기 당시 13세였던 샐리 포터 감독은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극심한 공포에 떨었다. 아예 세상이 멸망할 것으로 여겼던 감독은 자신의 감정을 진저에게 불어넣었다. 엘르 패닝이 열연한 진저는 지금이라도 세상이 멸망한다는 생각에 반핵시위에 나서는 소녀다. 상대역 로사는 진저와 옷은 물론 머리스타일, 정치와 음악까지 공유하며 꿈을 키우는 단짝이지만 새로 찾아온 사랑에 집착한다. 그 사랑의 대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진저는 결국 로사와 대립한다.
영화는 격변하는 혼란기를 꿋꿋하게 견딘 10대 소녀의 우정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애초에 가고자 하는 길이 달랐던 진저와 로사의 우정은 급변하는 거대한 사회분위기에 결국 예측치 못했던 방향으로 쓸려가 버린다. 소용돌이 속에 우정을 지키려는 소녀의 감성을 호소력 있게 연기한 엘르 패닝과 앨리스 잉글러트의 연기에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하지만 길지 않은 러닝타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한 듯 과한 전개에는 의문이 남는다. 여러모로 로랑 캉테 감독의 ‘폭스파이어’와 겹치지만 그만한 충격적 반전이나 카타르시스가 없다는 점도 아쉽다.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