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강필성 기자] 최근 정유 유화업계에서 적과의 동침이 부쩍 늘고 있다. 경쟁사와 손잡고 합작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경쟁자들도 모두 협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발표된 합작사는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은 지난 17일 1조원 규모의 혼합자일렌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했고 SK종합화학은 지난달 말 중국의 시노펙과 3조3000억원 규모의 부탄디올 합작사를, 삼성석유화학은 지난달 20일 독일 SGL과 탄소섬유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SK이노베이션은 지난 5일 중국의 베이징자동차그룹, 베이징전공과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를, 올 초 독일 콘티넨탈과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를 설립한 바 있다. SK케미칼은 지난 2월 일본의 데이진과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일종인 PPS 관련 합작사를 세우기로 했다.
이외에도 소규모 합작법인 설립을 포함하면 올해 합작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두손으로도 꼽기가 힘들 정도다. 때문에 올해 추진되는 정유·유화업계의 합작사 투자규모만 수조원을 훌쩍 뛰어넘으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대형 합작사가 유독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정유·유화 설비증설이나 신설는 상대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데, 이를 합작을 통해 분담할 경우 상대적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합작사가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삼는다는 점도 포인트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업체의 경우 해외에 생산거점을 만들 경우 각 정부의 승인부터 판매망을 갖추는 일까지 적잖은 부담이 된다”며 “합작사로 설립하게 되면 현지 업체의 마케팅, 노하우를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기술적인 부분에서 각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국내기업은 물론 세계 각 기업이 탄소섬유나 자동차배터리의 경우 서로 기술 보완을 통해 품질향상을 도모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합작사가 만능인 것만은 아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합작사 설립이 자칫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화업계 관계자는 “합작사 설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권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는 점인데 이 부분이 굉장히 미묘하다”며 “특히 경영권을 양보했다면 경쟁사 등에게 기술유출이 이뤄질 가능성 등도 면밀히 검토해야한다”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시장에서 합작 관계에서 기술유출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국에 진출한 폭스바겐과 중국 최대 자동차 생산업체 이치 등이 이같은 갈등을 겪고 있고 지난해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합작사 설립 논의가 기술유출 우려로 인해 무산되기도 했다.
사업 경영권과 주도권도 복잡한 사안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삼성SDI와 독일 보쉬의 자동차 전지 합작사 SB리모티브다. 두 회사는 합작 이후에도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 및 사업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 끝에 결국 해산하기 이르렀다.
현대중공업은 KCC와 만든 태양광 합작사 KAM의 지분을 손실처리하고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KCC로부터 손해배상 중재신청을 당했다. 현대중공업이 사업을 포기하면서 KAM의 부실을 떠안게 된 KCC가 소송에 나선 것이다. 이들이 범 현대가의 사촌 관계임을 감안하면 이번 갈등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마다 문화와 이해가 다르다보니 합작사 설립, 운영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는 일은 빈번하다”며 “한화그룹와 대림그룹이 합작으로 설립한 여천NCC는 불과 수년 전에 오너를 고소하는 등 극심한 감정대립을 겪기도 했다”고 전했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