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세혁 기자] “나이 좀 들면 어때? 아직 노래할 수 있잖아.”
은퇴한 음악가들의 보금자리 비첨하우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공연기획자와 지휘자, 악단주자와 성악가가 한데 모여 노년을 보낸다. 젊은 의사에게 야한 농담을 건네고, 나이든 탓에 이젠 음정 맞추기도 버겁지만 비첨하우스의 하루하루는 즐겁다. 치매 탓에 기억이 예전 같지 않지만 같은 일을 하던 사람들이 함께 늙어가는 곳이기에 서로를 끌어안고 이해한다. 그래서 비첨하우스는 늘 따스하다.
구성원들이 고령이다 보니 날마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루아침에 친구 하나가 응급실로 실려 가기 일쑤다. 게다가 비첨하우스는 운영난을 겪고 있다. 때문에 이곳에서 머무는 음악가들은 인생 마지막 반전을 꾀한다. 왕년의 이름값을 이용(?)해 성대한 무대를 꾸며 후원을 받아내는 게 비첨하우스 일원들이 생각해낸 묘안이다.
명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연출한 ‘콰르텟’은 은퇴한 음악가들의 이야기다. 비첨하우스에 머무는 음악가들을 통해 관객들은 누구나 나이 앞에서 공평하다는 명징한 진리를 깨닫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노년의 삶과 죽음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음정 박자 맞추는 데 도가 튼 음악가들 사이를 비집고 터지는 불협화음을 통해 진정한 인생의 하모니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영화의 진가는 바로 여기에 있다.
평온한 비첨하우스는 진(매기 스미스)의 등장으로 흔들린다. 진은 과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인물이다. 세상을 울리는 노래로 시대를 풍미한 진은 비첨하우스에 들어간 것 자체가 굴욕이다. 걷기가 불편하고 목청도 예전 같지 않지만 자존심은 젊은 시절 이상이다. 그래서 진은 비첨하우스에 오자마자 이곳 사람들과 부딪힌다.
인생 모든 것이 떳떳한 진의 유일한 미안함은 레지(톰 커트니)다. 젊은 시절 레지에게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준 진은 레지에게만큼은 죄인이다. 비첨하우스에 들어가면서도 진은 레지의 존재가 걸렸다. 그렇게 둘은 수 십 년이 지나 백발이 된 채 재회한다.
더스틴 호프만은 대조적인 인물 진과 레지를 통해 인생의 하모니를 이야기한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진은 고상하고 귀티 나는 음악 속에 묻혀 살기 원하는 완고한 인물이지만 레지는 열린 음악가다. 음악적 사상이 확고히 다른 두 사람의 연애관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다. 진은 연애에 있어 무척 자유분방하지만 레지는 지고지순하다. 둘의 전혀 다른 사고를 따라가며 영화의 끝을 상상하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러닝타임 내내 쪼글쪼글한 할아버지 할머니만 등장하는 영화 ‘콰르텟’은 잔잔하고 담담하면서도 활력이 넘친다. 재치있는 대사와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음악이라는 주제가 적절하게 섞여 훈훈함을 준다. 기억이 예전같지 않고 닳아빠진 관절만큼이나 실력이 떨어졌건만 뭐 어떠랴. 우린 아직 함게 노래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영화 ‘콰르텟’이 전하는 메인 메시지다.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